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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이재명 의사가 매국노 이완용을 응징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혹시 여러분은 요즘 회자되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를 아십니까? <대한매일신보> 1909년 12월 23일 치 기사에는 “총리대신 이완용씨는 작일(22일) 상오 11시 종현(鍾峴) 천주교당 내에서 설행한 비리시(比利時, 벨기에) 황제폐하 추도식에 참열(參列)하였다가 (중간 줄임) 이완용씨의 요부(腰部, 허리)를 자(刺)하매(칼로 찌르매) 씨가 도피하려 할 때에 배후로서 우(又) 기(其) 견부(어깨)를 자하야(찔러) 3개소에 중상을 부(負)하엿고(입히고) 해(該, 그) 자객은 평양인 이재명인데 현장에서 등시(登時) 포박되엿다더라.”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이재명 의사는 원래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을 추진하다가 어려워지자 1909년 11월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주창하는 성명서를 공포하면서 이른바 ‘합방운동’에 착수하는 것을 보고 대신 을사5적 처단을 추진합니다. 그러던 중, 이완용 등 역적들이 12월 22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11시 성당 문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다가 매국노 이완용을 공격한 것입니다. 의사는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자 칼을 들고 달려들어 이완용의 허리를 찌르고, 도망하려 하자 다시 어깨 등 3곳을 더 찔러 중상을 입혔지요.



체포된 뒤, 농상공부대신인 역적 조중응이 선생을 보고 “네가 해친 자냐?”하고 묻자 선생은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라며 순사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워 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정에서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판사에게, 선생은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천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엄숙한 어조로 역적 이완용을 8개 죄목과 함께 통렬히 꾸짖었지요. 1910년 9월 30일, 사형 집행으로 순국한 이재명 의사의 나이 불과 24살이었는데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