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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악명 높은 파락호 김용환 선생, 건국훈장 받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50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마평 서씨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위는 학봉 김성일 선생의 13대 종손 김용환(金龍煥, 1887∼1946년) 선생의 외동딸이 파락호(破落戶 :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로 알고 평생을 원망했던 아버지가 건국훈장을 추서 받던 날, 존경과 회한을 담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제목으로 남긴 편지글입니다. 김용환은 안동에서 악명 높은 파락호였습니다. 김용환은 안동 일대 노름판을 주름잡았는데 초저녁부터 노름을 하다가 새벽녘이 되면 판돈을 모두 걸고 막판 내기를 했지요. 그런데 여기서 지면 하인들을 시켜 판돈을 덮치는 수법까지 쓰곤 했습니다. 그렇게 망나니짓을 하다 결국 종가 재산으로 내려온 논밭 18만 평(요즘 돈 350억 원 가량)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급기야 외동딸이 시댁에서 받은 장롱 살돈까지 가로채 노름으로 날렸지요. 이에 딸은 집에서 쓰던 헌 장롱을 가지고 울며 시댁에 갔는데 시댁 어른들은 “나쁜 귀신이 붙어 왔다”며 그 장롱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던 선생이 1946년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무렵 그의 벗이 “이제는 말할 때도 됐다.”고 권했지만 그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니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며, 비밀을 가슴에 묻은 채 눈을 감았지요. 이후 선생이 만주 독립군 자금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파락호 노릇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감내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김용환 선생은 진정한 우리의 사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