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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시금치, 조선 때 “적근채”라고 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50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菠薐傳數名(파릉전수명) 시금치는 여러 명칭이 전해지는데
   其始出波羅(기시출파라) 그 시작은 페르시아에서 온 것이네
   我國有俗稱(아국유속칭) 우리나라에도 세속의 칭호가 있는데
   恐是赤根訛(공시적근와) 아마 적근의 와전인 듯싶네“



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의 한시(漢詩) “파릉(菠薐, 시금치 ‘파’, 시금치 ‘릉’)”입니다. 한시 가운데는 특이하게도 시금치를 소재로 한 것인데 김창업은 이 시금치를 “시근채(時根菜)”라고 풀이를 달아놓았습니다. 시금치는 페르시아에서 들여온 것으로 파사채, 파사초, 파채라고도 했으며, 조선에서는 뿌리가 붉어 “적근채(赤根菜)”라고도 불렀다지요. 페르시아를 한자를 빌려 파라(波羅)고 했습니다.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선조(宣祖) 때 이후로 나온 문장은 볼만한 것이 많은데 시와 문을 겸한 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다.”라고 하여 김창협의 글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대 명문 출신으로 김창협은 동부승지ㆍ대사성ㆍ대사간을 지냈지만 영의정을 지낸 아버지 김수항(金壽恒)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죽자 벼슬을 버리고 숨어 살다가 갑술옥사 뒤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져 호조참의ㆍ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습니다. 24살 때 송시열과 소학(小學)에 대해 토론했고 이이(李珥)의 학통을 이어받았을 정도로 학문도 높았으며, 글을 잘 짓고, 글씨도 잘 쓴 당대 문장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