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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신령스러운 새 인물이 등장 때 엇모리장단을

[국악속풀이 30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흥보가 먹을 것을 얻으려 놀보집에 갔다가 오히려 형에게 매를 맞고 돌아오는 이야기를 하였다. 놀부가 마당쇠를 불러 곳간문을 열라고 지시한 다음, 곳간 속에 들어 있는 동면(東面)서 들어온 쌀 천석, 북면(北面)서 들어온 보리 오백석, , , 쉰 섬과 서숙(조를 말함)을 확인하면서 지리산서 도끼자루 헐라고 가지고 온 박달 몽둥이를 꺼내오라고 해서 동생을 때리는 대목이 자진모리장단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부분의 사설은 뒤주나 궤를 헐기 싫어서 전곡을 주기 어렵다는 내용과 돼지나 닭을 굶기는 일이 동생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놀보의 횡포가 계속된다는 이야기, 부인의 물음에 흥보는 닭 잡고, , , 고기를 많이 채려다 주었고, 형과 형수 공론하여 쌀과 돈을 많이 주시어 짊어지고 오다가 도적에게 싹 다 뺏기고 매만 실컷 맞고 오는 길이라고 둘러댄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중타령>으로 중이 내려와서 흥보네 집을 방문하고 가난한 흥보에게 집터를 잡아 주는 대목이다.

 

형이 준 쌀과 돈을 도적들에게 다 뺏기고 매만 실컷 맞고 오는 길이라는 변명을 하자, 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부인이 그런데도 내가 알고, 저런데도 내가 아요. 가빈(家貧)에는 사현처(思賢妻), 국란(國亂)에는 사양상(思良相)”이라는 푸념조로 흥보네 집이 가난한 것은 부인이 현명치 못하다는 자책의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가난이 죄가 되어 흥보와 부인이 울고불고 하는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을 때, 마침 이들을 살려 주게 될 스님이 한 분 내려오는데, 이를 일러 <중타령>이라 부르는 것이다.



 중타령은 엇모리장단위에 얹어 부른다. 엇모리장단이라 함은 규칙적인 박자의 조합이 아닌, 3박과 2박의 혼합박 형태인 5박자로 구성된 장단이다. 흔히 2장단이 한 쌍을 이루고 쓰이고 있기 때문에 10박형 장단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장단(長短)이란 음악의 구성요소로 선율이나 시김새와 함께 매우 중요한, 아니 절대적인 요소라 하겠다. 그러므로 장단은 판소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악 장르에서 절대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쉽게 이해한다면 장단은 길고 짧은 시간의 단위박들이 조합되어 일정한 형태를 갖춘 리듬형이다. 특히 판소리 음악에는 다양한 장단의 형태가 등장한다.

 

제일 느린 장단이 진양장단이다. 이를 시작으로 조금 몰아가는 중몰이장단(중모리, 중머리 장단이라고도 씀)이 있고, 이보다 조금 더 빠르게 몰아가는 중중모리장단이 있으며, 잦게 몰아가는 잦은모리장단이 있는가 하면 휘몰아치듯 빠르게 몰아가는 휘모리장단도 있으며, 강약이 엇바뀌어 진행되는 엇모리장단이나 엇중모리장단 등이 쓰이고 있다. 또한 가장 느린 진양장단이라 해도 한 가지가 아니라 더 느린 형태도 있고, 조금 빠른 형태의 장단도 있어서 더욱 세분되기도 한다.

 

대체로 장단은 빠르기도 다르고, 박자의 구성도 다르기 때문에 사설의 전개에 따라 각기 다른 장단이 활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춘향가의 암행어사 출도대목이나 심청가에서 심청이 물에 빠지기 직전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면 빠른 장단으로 소리를 맞추어야 한다. 반대로 느리고 여유 있는 한가한 분위기에는 느짓한 장단을 써야 사설에 맞는 장단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단은 4박자, 6박자, 8박자, 12박자 등 짝수로 되어 있지만, 엇모리장단은 5박자의 홀수 박자의 구성이어서 다소 어렵고, 강박의 위치도 달라지기 때문에 일반적 상황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흥보네 집으로 중이 시주하려 등장하는 대목에 엇모리장단이 쓰이는 것처럼 판소리에서는 대체로 신령스러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경우, 엇모리장단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녹주 명창이 전하는 <중타령> 대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중 내려온다. 중 하나 내려온다. 저 중의 거동을 보소. 헐디 헌 중, 다 떨어진 송낙 요리 송치고, 저리 송치고 홈뻑 눌러쓰고, 노닥노닥 지은 장삼 실띠를 띠고, 염주 목에 걸고, 단주(나무구슬 8개로 만들어 팔에 거는 염주) 팔에 걸어 소상반죽(所湘班竹) 열두 마디 용두(龍頭)새김 육환장(지팡이의 일종), 채고리 길게 달아 처절철 철철 흔들흔들 흐늘거리고 내려오며 염불하고 내려온다.” <중략>

같은 동편제의 박봉술이 전하는 중타령도 엇모리장단으로 부르나 부분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중 내려온다. 중 하나 내려온다. 저 중의 호사 봐라. 저 중의 거동봐라. 굴갓 쓰고 장삼입고,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구리 백통 반()은장도 고롬에 되게 안에 차, 용두 새김 육환장 눈 우에 번뜻 들어 처절철철철 처절철 짚고 흔들흔들 염불하며 내려온다. 중이라 허는 것, 들어도 염불이요, 나서도 염불이라. 염불 많이 허면 극락세계로 간다더라.<중략>

 

흥보 문전에 당도하여 동냥 왔다고 하니 흥보가 깜짝 놀라면서 내 집을 둘러보면 서발 장대를 휘둘러대도 거칠 물건이 하나도 없는 집이라고 난색을 표한다.

 

소승은 걸승(乞僧)으로 댁 문전을 당도허니 곡소리가 나거날 생사가 미판(未判)이라. 무슨 연고가 계시오니까?” 묻자 흥보가 권솔들은 많고 먹을 것이 없어 죽기로서 우는 길이라고 대답하니 복()이라 하는 것은 임자가 없는 것, 너무 서러워 말고, 소승의 뒤를 따라오면 집터 하나를 잡아 드리겠다고 권한다. 이리하여 흥보가 스님의 뒤를 따라가서 집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복이라 하는 것, 정말 임자가 없는 것인가? 누구에게나 복은 오는 것인가? 근래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고 험해 놓으니 이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