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선덕여왕은 자신이 “향기 나는 왕”임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경주에 “향기 나는 임금의 절”이란 뜻의 분황사(芬皇寺)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모란은 임금과 부귀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모란은 궁중의 그림이나 무늬의 소재로 즐겨 썼는데 조선시대에는 모란병풍이 일월오봉도나 십장생도 병풍만큼 다수 만들어, 임금이 거처하는 어전이나 침전을 꾸몄습니다. 더불어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나 왕세자를 책봉하는 예식인 책례(冊禮)와 같은 잔칫날뿐만 아니라, 제례나 상례와 같은 의례 때도 쓰였지요.
모란병풍은 궁중뿐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혼례 때도 마당에 모란이 그려진 큰 병풍을 둘렀습니다. 혼인하는 날만큼은 모란병풍을 두르고 임금처럼 대접을 받기를 꿈꾼 것이지요. 그러나 이 모란병풍은 비싼 것이기에 왕실에 필요한 의복ㆍ식품 등을 관장한 관청인 제용감(濟用監)에서 가난한 선비들을 위해 혼례 때 모란대병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괴석과 모란을 그린 작품 가운데 압권인 국립고궁박물관의 <괴석모란도>를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