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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엘레지 화원, 명지산

[정운복의 아침시평 6]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뜻하지 않게 선거로 맞이한 휴일

사전 투표를 마쳤기에 가평에 있는 명지산을 찾았습니다.

입구부터 흐드러진 철쭉의 화사함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명지(明智)”라는 이름으로 보아 지혜를 밝혀주는 산이니

산에 오르기 전에 자못 기대가 컸습니다.

1,267미터의 산은 자못 높은 편이었는데

들머리 고도가 낮은 이유로 꼭대기까지 네 시간을 걸어야 하는 긴 산행입니다.

 

오르는 길 양안으로 피어난 연분홍 철쭉의 고운 자태가 멋스럽고

꼭대기엔 봄의 마지막 자락이 아쉬워 곱게 물들여 보내려는

진달래의 가녀린 몸짓이 애처로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힘들 때 생각이 깊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산도 오를 때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내려갈 때는 별 생각 없이 내려가니 말이지요.

그래서 잘 지은 대학은 가장 높은 곳에 도서관이 있습니다.

공감능력과 배려심 또한 고난 속에서 깊어가는 것이니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일찍 철이 드는 이유일 것입니다.

 

나물을 뜯을 요량으로 오른 산이 아니기에

그냥 눈으로 만날 수 있는 산나물은

굳이 취하지 않아도 반가움이요 풍요로움입니다.

 

삽추, 나물취, 우산취, 둥글레, 잔대, 으아리, 홑잎....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산이 주는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산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명지산 8부 능선부터 얼레지 군락지가 시작됩니다.

곳곳에 연보라꽃이 겸손한 자세로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천상의 얼레지 화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얼레지는 백합과의 꽃이고 꽃말은 질투, 바람난 여인이니

고개를 차마 쳐들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누가 심고 가꾸지 않아도 자연이 베풀어주는 멋스러움은 위대함입니다.

그리고 그 풍광을 만끽하는 것은 다리품을 팔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조망

깨끗한 공기

산이 주는 깊은 호흡

청아한 산새들의 지저귐

너럭바위를 감싸 안고 흐르는 시리도록 투명한 계곡물.....

힘들어도 산을 찾는 이유이지요.


 

명지산 여덟 시간의 산행은 힘들었지만

초여름 산자락의 아기자기함이 큰 의미로 남았습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방바닥에서 엑스레이만 찍을 것이 아니라

등산화 끈을 조이고 가까운 산에라도 다녀와봄직 합니다.

산은 정태적인 것이고, 위엄 있는 것이며, 인자함 자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