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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썩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물론 실현될 수 없는 소망이지만 나는 어렸을 때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진시황은 죽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러 한반도에까지 사람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환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죽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진다.

 

만일 우리의 10대조 할아버지까지 모두 죽지 않고 살아 계신다면 그분들을 위한 식량과 주택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한 후손들은 설날이 되면 세배하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난 후에 일생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죽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인체를 구성했던 물질이 썩어서 분해되어 흩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유기 물질이란 무기 물질과 대비되는 말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호르몬, 셀룰로스, 효소, 요소(尿素) 등 생물체의 몸을 구성하며 생물체 내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을 말한다.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과 식물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유기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에는 유기 물질은 생물체의 신비한 생명 현상에 의해서 생명체 내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화학자 뵐러가 1828년에 실험실에서 화학 약품인 시안산암모늄을 가열하여 유기 물질인 요소를 만들어 낸 후에 생명체에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이라는 유기 물질의 정의는 무너졌다. 뵐러의 실험 결과는 당시의 통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뵐러는 3년 동안이나 발표를 미루다가 편지를 통하여 콩팥이 없어도, 아니 동물이 없어도 요소를 합성할 수 있다.”라고 발표하였다. 현재는 유기 물질은 탄소 화합물이라고 느슨하게 정의된다.

 

생명체가 만드는 유기 물질의 공통적인 특징은 썩는다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물은 쉽게 상하고 곧 썩는다. 우리가 읽는 책을 만드는 종이의 원료는 나무에서 나오는 펄프이며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결국은 썩게 된다. 나무로 만든 집도 시간이 지나면 썩는다. 그러나 무기 물질인 벽돌로 만든 집은 썩지 않는다. 그렇다면 물건이 썩는다는 성질은 인간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얼핏 생각하면 물건이 썩지 않으면 더 편리할 것 같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비닐과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 대표적인 물질이다. 플라스틱은 분자량이 적은 유기 화합물에 첨가제를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합성한 고분자 화합물로서 합성수지라고도 한다. 최초의 플라스틱은 1909년에 벨기에 태생의 미국 화학자 베이클랜드가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가열하여 만들었는데, 베이클라이트라고 이름 붙였다. 베이클라이트는 녹여서 어떠한 형태의 물건이든 만들 수 있었으며, 또 굳으면 단단하고 물이 새지 않고 전기를 통과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플라스틱은 석유를 원료로 하여 대량 생산할 수 있으며 차츰 그 용도를 넓혀 갔다. 종이, 나무, , 유리, 철 대신에 플라스틱이 사용되면서 최근에는 일회용 제품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0여 종에 달하는 플라스틱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석유 화학 제품의 약 50%가 플라스틱이라고 한다. 이렇게 문명의 이기처럼 보이는 플라스틱이, 사용된 뒤 버려지면 환경 공해 물질로 지목 받는다.

 

우선 플라스틱은 썩지 않기 때문에 부피가 줄지 않는다. 플라스틱 병은 썩는 데 100년이 걸리고, 충진제로 많이 쓰이는 스티로폼은 썩는 데 500년 걸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일 플라스틱을 소각장에서 태우게 되면 여러 가지 대기 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쓰레기에는 여러 가지 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에 쓰레기를 태울 때에 어떠한 반응에 의해 어떠한 물질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염소를 포함한 플라스틱이 타면 다이옥신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다이옥신은 월남전 때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의 부산물로 처음 알려졌는데, 매우 독성이 강한 물질로서 우리나라의 소각장에서도 검출되어 한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50년에서 2015년까지 66년 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양이 83t에 달한다고 한다. 2016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가정에서 배출하는 플라스틱류는 하루에 4900톤이라고 한다. 우리가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일부는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홍수가 나면 하천으로 흘러들고 결국에는 바다에 도달하여 떠다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버린 컵라면 용기가 서해로 흘러들고 해류를 타고 흘러가다가 일본의 해안에 쌓이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바다로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한해 800만 톤으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이 논문에 따르면, 바다를 접한 세계 192개국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가 2010년 기준 최소 480만 톤에서 최대 1,270만 톤으로 추정되며, 중간값이 800만 톤이다. 이 논문의 공저자인 라벤다 교수는 추산치를 480t으로 잡아도 세계 연간 참치 어획량 약 500t과 엇비슷한 수준이라며 우리는 바다에서 참치를 꺼내고 그 자리에 플라스틱을 채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개발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은 이제 썩는 플라스틱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른바 분해성 플라스틱은 필요한 기계적, 화학적 성질을 보유하고 있다가 사용이 끝나면 분해되어 썩는 플라스틱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생분해성, 광분해성, 생붕괴성의 3가지로 분류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미생물에 의한 효소를 첨가하여 분해가 되는 플라스틱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요즘에는 모종이나 채소를 기를 때에 잡초의 번식을 막고 보온을 위해 비닐로 식물 주위를 덮어 주는데, 수확한 후 비닐이 그대로 토양에 남아 문제가 되고 있다.

 

광분해성 플라스틱은 자외선에 민감한 광할성제를 첨가하여 태양 광선을 일정 기간 쬐면 분해가 일어나도록 만든 플라스틱인데 주로 농업용으로 많이 쓰인다. 첨가제의 종류와 양에 따라 분해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한때 백화점 등에서 판촉용으로 나눠 주었던 분해성 비닐봉지는 합성수지에 전분을 섞은 것으로, 전분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생붕괴성 플라스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분해성 플라스틱은 기술적으로는 문제점이 해결되었지만 값이 비싸기 때문에 보급이 잘 되지 않고 있다.

 

물건이나 음식물이 썩는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불편하지만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성질이다. 자연 생태계의 기본 원리는 물질의 순환인데, 물질이 순환되려면 우선 썩어야 한다. 썩지 않으면 순환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썩지 않는 쓰레기인 플라스틱은 이러한 자연 생태계의 원리를 위배하고 있기 때문에 공해가 되고 있다.

 

음식물을 썩지 않게 보관하는 냉장고는 우리의 식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이다. 요즘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김치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를 2대씩 가지고 있다. (최근에 어느 장군 부부는 공관에서 살면서 냉장고를 9대나 가지고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다.)

 

그러나 속도가 느릴 뿐 냉장고에 보관한 음식물도 시간이 지나면 썩게 된다. 생선도 냉장고에 넣어 얼린 것은 맛이 떨어지듯이, 과일이나 채소도 수확한 즉시 먹는 것이 가장 신선하고 맛도 좋다. 음식물을 썩지 않게 하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 먹지 못하고 버리면 이중의 낭비다. 신선한 음식만 먹으려면 냉장고를 치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썩는 것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