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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사람이 나무 옆에 있으면 곧 쉬는 것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요즘 사람들은 매우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다 보니 도무지 쉴 틈이 없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40대 남성 가운데 과로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로사란 쉬지 않고 일만 해서 죽게 되는 병이다. 그런데 한문으로 쉴 휴() 자는 사람 인() 변에 나무 목()을 한 형태이다. 곧 사람이 나무 옆에 있으면 그것이 곧 쉬는 것이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은 나무 곁에 갈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다.


 

최초의 인류는 숲에서 살았다. 숲에서 식량을 얻고, 은신처를 마련하고, 맹수를 피해 나무에 올라가기도 했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자기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는데, 이것은 과거 숲에서 살던 시절, 맹수에 쫓기면 얼른 나무에 오르기 쉽도록 생리적으로 손에 땀이 나던 무의식적인 반응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숲은 오랫동안 인류의 생태적 근거지였다. 인류의 역사 200만 년 중에서 인간이 숲을 떠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만 년 전이다. 지난 1만 년 동안에 농경지, 목장, 도시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 내었고, 지구 삼림의 1/3이 사라졌다. 언제부터인지 나무와 숲은 삼림 자원이라는 경제 용어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종이, 가구, 합판, 건축 자재 등 목재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이 사라져 갔으며, 이제는 남미의 아마존 강 유역 열대우림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 가고 있다.

 

나무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 나무는 목재를 제공하고, 연료를 제공하고, 광합성을 통하여 기후 변화의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생물체가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공급해 준다. 또한 나무가 많은 숲은 비가 오면 물을 땅속에 저장해 주었다가 가뭄 때에 흘려보낸다. 숲에 나무가 많으면 토사가 유실되는 것을 막아 준다. 또한 숲은 버섯, 나물, 약초, 열매 등을 제공하고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된다. 그러나 이처럼 막연히 말하면 사람들은 되묻는다. “돈으로 따져서 얼마나 혜택을 주는가?”라고.

 

미국에서 발표된 <도시림에 관한 보고서>를 인용해 보자. 수령 50년의 나무 한 그루는 일생 동안 57,151달러(우리 돈으로 7,000만 원)의 혜택을 베푼다. 나무 한 그루는 지구 온난화를 완화시키고, 토양 유실과 홍수를 방지하며, 야생동물에게 서식처를 제공한다.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효과까지 합하면 1년에 약 35만 원 이상의 혜택을 준다. 매년 이만한 액수를 연리 5% 복리로 50년 동안 합산한 금액이 7,000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나무 한 그루가 주는 혜택이 이렇다면 숲이 주는 혜택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관해서는 국립산림과학원에서 2010년에 측정한 자료가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숲의 기능을 휴양지 제공, 대기 정화, 수자원 함양, 토사 유출 방지 등 7가지로 나누어 금전적으로 환산해 보았다. 계산 결과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연간 109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9.3%를 차지하는 규모며, 국민 1인당 연간 216만원의 혜택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피곤한 도시인에게 숲이 주는 또 하나의 혜택은 삼림욕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삼림욕이란 숲의 향기 속에 온몸을 맡긴 채 긴장을 씻어 냄으로써 피로를 푸는 자연 건강법으로, 일명 그린 샤워라고도 한다. 등산과 달리 일상적인 복장으로도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부담되는 장비도 필요치 않아 나들이 삼아 어린이를 포함한 온 가족이 가까운 숲에 삼림욕을 하러 갈 수 있다.

 

숲속에 들어가면 특유의 연한 숲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내뿜는 항생 물질인데, 나무가 세균과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배출하는 것으로 살균 효과가 뛰어나다.

조선일보에 명컬럼을 연재했던 ()이규태 씨가 쓴 청산아 왜 그리 야위어만 가느냐라는 책에서는 우리나라가 근대화되기 전에 있었던 내나무에 관한 아름다운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딸을 낳으면 밭두렁에 그 아이 몫으로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이를 내나무라고 했다. 돌이 지나면 심게 마련인 이 내나무는 그 주인공과 평생 운명을 더불어 하는 공동운명체였다. 딸의 내나무는 그 딸이 시집갈 때 베어서 장롱를 짜주거나 반닫이를 짜서 더불어 시집에 간다. 그리고 평생을 한 방에서 더불어 산다.

 

아들의 내나무는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 죽었을 때 베어서 그 속에 들어가 영생할 관목으로 쓴다. 이처럼 한국의 내나무는 나의 탄생과 더불어 나와 운명을 같이 하고 시집갈 때 같이 가며 죽어 묻히는 생사를 초월한 한국인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것이다. 한 그루 나무에 내 인생을 기탁한 내나무이기에 그에 수반된 민속도 다양했다.

 

딸의 내나무 곁에는 으레 해바라기를 심기 마련이다. 많은 씨앗이 촘촘히 박힌 해바라기는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는 아들딸 많이 낳는 자식복의 상징이었다. 또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면 그 내나무에 표주박 덩굴을 올린다. 그 내나무에서 열린 표주박으로 술잔을 만들어 시집가는 날 신랑 신부가 더불어 입을 대는 합심주를 담는 술잔으로 삼는다. 매우 시적인 내나무가 아닐 수 없다.

 

아들이 앓아누우면 어머니는 시루떡을 빚어 그 아들의 내나무 앞에 놓고 밤새워 기도를 했고 단명을 예언 받으면 명을 상징하는 타래실을 그 내나무에 감아 장수를 빌기도 했다. 벼슬을 하면 고향에 돌아와 매고 있던 관띠를 내나무에 둘러 주기도 했다.”

 

나무는 이처럼 인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로 뿌리가 같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살았다. 나무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아낌없이 주었던 것이다.

 

숲을 바라보면 병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에 실렸었다. 미국 델라웨어대학 울리치 교수의 연구는 숲이 살아 있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에서 병실 창을 통해서 숲을 볼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를 구분해 수술한 뒤 회복률을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숲이 병을 고쳐 주는 것이었다. 숲을 볼 수 있는 환자가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입원 기간이 훨씬 짧았고 진통제 투여가 적었으며, 간호 보고서에 나타난 부정적인 측면도 적었던 것이다. 사람이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을 회복할 수가 있다는 얘기다.

 

나무가 없는 공원, 나무가 없는 산을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나무가 있기 때문에 지구는 녹색별이 되었고, 나무가 있는 숲에서 인류가 나타나고 진화할 수 있었다. 나무는 인간에게 유익한 여러 가지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어머니와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찬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