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가면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拓境碑)”가 있습니다. 이 진흥왕척경비는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돌아보면서 민심을 살핀 뒤 그 기념으로 세운 비입니다. 비석의 높이는 162㎝, 너비는 174㎝, 두께는 30∼51㎝입니다. 화강암의 자연석 앞면을 편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새기고, 비면의 둘레에는 윤곽을 선으로 새겼습니다.
비는 창녕읍의 목마산성(牧馬山城)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입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지만, 뒷부분은 선명한데 각 행 18∼27자씩 모두 27행 643자이지요. 특히 맨 처음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있어 561년(진흥왕 22) 곧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진흥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고 합니다.
비문에는 ‘답(畓)’과 같은 우리나라 특유의 한자가 있는 것도 의미가 있으며, 뒷부분에 당시 임금을 따르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신라 중고기(中古期) 곧 법흥왕부터 진덕여왕까지의 관제ㆍ신분제ㆍ사회 조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