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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육십년 전에는 나도 23살이었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64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腹裏詩書幾百擔(복리시서기백담) 배 안에 시와 글이 거의 백 짐은 되는데

 今年方得一襴衫(금년방득일란삼) 금년에야 한 난삼을 얻었네

 傍人莫問年多少(방인막문년다소) 곁에 있는 사람들아! 나이 많고 적음을 묻지 마라

 六十年前二十三(육십년전이십삼) 육십 년 전에는 나도 23살이었네


 

이는 지은이 조수삼(趙秀三)83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고 지은 것으로 사마창방일 구호칠보시(司馬唱榜日 口呼七步詩)”라는 제목이 붙은 자전적인 한시입니다. 그는 역관중인(譯官中人)이라는 신분 탓으로 벼슬을 하지 못하다가 83살이 되어서야 노인에 대한 예우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오위장(五衛將)의 벼슬을 받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83살이 된 지금에야 과거급제한 뒤에 입는 옷 란삼(襴衫)”을 입었다고 고백하지만, 자신의 배에는 지은 시와 글이 백 짐은 되며, 육십년 전에는 겨우 23살이었다고 말하면서, 나이 적고 많음을 묻지 말라고 합니다.

 

조수삼은 60살이 돼서야 벼슬에 나아간 강세황보다 더 훨씬 늦은 나이에 겨우 벼슬자리 하나 받지만 자부심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시를 씁니다. 그는 송석원시사(宋石園詩社, 서울의 중인계층들이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玉流洞)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단체)의 핵심적인 인물이지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그는 김정희한치원 등 당대의 사대부세도가들과도 친밀히 지냈고, 청나라를 6차례나 다녀왔으며,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자연과 풍물을 읊은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 61살에 함경도지방을 여행하면서 민중들의 고난을 담은 북행백절(北行百絶), 도시생활인의 생활을 산문으로 쓴 뒤 칠언절구의 시를 덧붙인 추재기이(秋齋紀異)는 그의 성가를 드높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