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김수연 흥타령에 공연장은 모두 하나 되어

[국악속풀이 33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울 삼성동 소재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열렸던 <김세종제 판소리보존회> 정례 발표회 이야기를 하였다. 김수연 명창을 비롯하여 제자들의 열연과 특별 출연자, 그리고 관객의 호응이 만들어낸 성공적인 발표회였다는 점, 판소리나 경기지방의 긴소리,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장르의 노래들은 노랫말이나 사설의 이해가 감상의 성공요인이라는 점,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부르는 단가(短歌)라는 노래는 짧고 간단한 노래로 긴 노래를 부르기 전, 목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이라는 점를 얘기했다.

 

초앞 대목의 기산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에서, 기산(箕山)은 중국 하남성에 있는 높고 깊은 산 이름이고, 영수(潁水)는 그 근처에 있는 맑은 강, 이곳에 소부나 허유와 같은 선비들이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고 해서 별천지, 곧 별건곤(別乾坤)이라고 한다는 점, ‘허유선비는 요임금으로부터 임금자리를 맡아 달라는 청탁을 받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강에 가서 귀를 씻었다고 하고, ‘소부는 허유가 귀를 씻은 물이라고 소에게 먹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김수연의 수제자인 강경아의 이별가가 또한 청중들로부터 갈채를 받았고 이어서 서영호의 아쟁산조가 찬조출연으로 연주되었는데, 아쟁이라고 하는 악기는 줄을 문질러 내는 찰현악기로 그 음색이 비극적 분위기에 적합하여 여성국극 반주음악에 많이 활용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산조도 연주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서영호의 아쟁산조 연주에 이어 신영희 명창의 춘향가 가운데 박석치 대목이 이어졌다. 신 명창은 근세 한국을 대표하던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로 현재 국가문화재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가 부른 대목은 김세종제의 춘향가가 아닌, 만정 김소희가 이어준 춘향가의 박석치 대목이었다.

 

이 대목은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서 남원에 내려오던 중 남원 입구에 있는 박석고개에 올라 좌우를 내려다보면서 지난날 춘향과의 만남을 회상하는 대목이다. 슬픈 곡조가 아닌 우조(羽調)의 틀로 담담하게 부르다가 고개를 지나 춘향의 집에 다다르게 되면 집은 폐허가 되다시피 해서 구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노랫말이 시()적이어서 인상적이다.


   

박석치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산도 옛 보든 산이요, 물도 옛 보든 녹수로구나. <중략>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트냐?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던 곳이로구나. 화림의 저 건네는 추천미색이 어데를 갔느냐. 나삼을 부여잡고 누수작별이 몇 해나 되며 영주각의 섯난 데는 불개청음허여 있고, 춤추는 호접들은 가는 봄빛을 아끼난 듯, 벗 부르는 저 꾀꼬리는 객의 수심을 자아낸다.”

   

신영희 명창은 판소리 북을 들고 재미있는 개그 프로에 출연해서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대중화 하는데, 일조를 한 명창으로 유명하다. 그는 극장 무대가 크든, 작든 간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통성으로 부르는 명창으로 또한 유명하다. 이 날도 그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통성으로 소리를 해서 객석으로부터 열띤 호응을 받았다.

 

그 다음 이어진 순서가 김수연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일반 강습생 20여명의 제창으로 옥중가(獄中歌), 곧 그 유명한 쑥대머리 대목이었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 나오는 쑥대머리는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옥중에 갇힌 춘향이가 이 도령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옥중에 갇힌 춘향이의 머리가 마치 쑥이 무성하게 자란 것처럼 머리카락이 엉클어져 있는 모습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이 대목은 임방울(1905~1961)에 의해 유명해 진 대목으로 지금도 명창의 예술혼을 기리고 새로운 차세대 명창을 선발하기 위해 광주에서는 임방울 국악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쑥대머리 하면 임방울, 임방울 하면 쑥대머리를 떠 올릴 만큼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과 울분을 판소리로 달래주었던 유명한 대목이다. 임방울의 쑥대머리 음반이 당시 100만장 이상 팔렸다고 하니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김세종제 춘향가에는 원래 쑥대머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옥중가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성우향 명창이 다른 제에 나오는 사설을 가감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여튼 이 날, 강습생들이 그 어려운 쑥대머리 대목을 능숙하게 제장해 준 것은 그 동안의 공력이 오래 되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최소 10년 이상의 공부를 한 강습생들이라고 하니 그들의 진지한 태도가 남다르게 보였다.

 

이어서 왕기석과 그의 일행이 흥부가 중에서 화초장 대목을 토막 창극으로 꾸며서 관객을 사로잡았다. 혼자 부르는 판소리를 역할에 따라 여러 창자가 분담하여 연기와 함께 불러나가는 창극은 역시 재미가 있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창극으로 만난 화초장 대목은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겠다.

 

이번 발표회의 마지막 순서는 김수연의 큰 제자들이 불러준 남도민요의 제창이었다. 이미 전주대사습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고 전국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을 정도로 명창 대열에 합류한 강경아를 비롯하여 박소영이라든가, 조엘라, 민현경, 그리고 유슬기, 박세연, 김재우 등 젊은 소리꾼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큰 제자들이 남도민요 중 <새타령>, <풍년가>, <진도아리랑> 등을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흥겹게 불러줌으로 해서 마지막 무대는 흥의 무대였던 것이다.

 

준비된 공연을 모두 끝내고 인사를 하러 무대로 나온 김수연 명창에게 개석에서는 '흥타령', '흥타령'을 연호하기 시작하며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김수연의 흥타령을 듣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객석의 요구였다. 흥타령을 듣지 않고는 오늘의 무대는 별 의미를 못 갖는다는 관객들의 요구를 뿌리칠 명분이 없었기에 김수연은 드디어 "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청 쳐라. 밤새도록 놀아 보리라. 아이고 데고, 허허 성화가 났네. ~" 를 불렀다.

 

제자들이 후렴은 받아주고, 다시 김명창은 소리를 메기고, 여기에 서영호의 흐드러지는 아쟁의 가락과 오경수의 대금가락, 그리고 조용복의 흥겨운 장단 등 생음악 반주가 곁들여지니 서울 도심의 한 공간은 이내 초가을 고향땅이 되어 버렸다. 관객 모두는 고향땅에 내려온 한 식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