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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영화 '남한산성', 그 선택과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자신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우리조선은 이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 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이는 치욕비(삼전도의 욕비(辱碑))라고 불리는 일명 삼전도 비(당시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의 내용이다. 정말 비의 내용처럼 조선 왕은 청국황제에게 죄를 진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고 황당한 청나라의 우격다짐이지만 이는 실화다. 죄가 있건 없건 조선 왕 인조는 청국에 죄인임을 고백해야했다. 한가위 날 개봉된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굴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 1637130, 인조는 신하의 복장으로 삼전도에 나아가 청 태종 앞에 치욕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이른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로 굴종한 것이다. 이 삼배고두는 영화의 막바지에 전개된 것으로 영화는 인조가 삼전도에 나와 무릎을 꿇기까지 충신들의 충언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청나라와 화친은 말도 안된다면서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역)과 잠시의 치욕을 견디고 생존을 도모하자고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역)과의 사이에서 인조의 고민은 깊어 간다.  순간 헷갈린다. A 아니면 B 상황 밖에는 없는 역사의 현실 앞에서 인조 아니라 그 어떤 성군이라도 간단한 결단을 내리기가 쉬울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최후의 1인까지라도 결사항전을 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치욕을 참고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영화의 절반은 피난처 남한산성의 침침한 방안에서 이뤄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 임금 앞에 머리를 조아린 신하들은 두 패로 나뉘어 갑론을박 중이다.


주화파(主和派,전쟁을 피하고 화해하거나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파) 최명길과 주전파(主戰派, 전쟁하기를 주장하는 파) 김상헌(김윤석 역)의 말잔치 속에서 인조는 갈팡질팡한다. 인조의 태도가 어느 한쪽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충신의 대립각이 더욱 심해진 것인지, 아니면 두 충신의 견해가 상충되기에 인조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청 태종이 군사를 20만 명으로 늘려 남한산성 밑 탄천에 포진시키자 남한산성은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빠져든다. 당초 산성 내에는 양곡 14,300석과 장 220항아리 등 50일간의 양곡이 준비돼 있었지만, 이마저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 인조의 선택은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청 태종은 직접 서한을 보내 화친의 뜻을 내비치며, 인조가 직접 성 밖으로 나와 군신의 예를 갖추고, 그에 앞서 척화신(斥和臣) 두세 명을 먼저 내보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인조는 차라리 척화한 신과 함께 죽을지언정 그들을 내줄 수 없다.” 하며 거부했다.

 

그러던 중 강화도가 이미 함락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침내 인조는 청 태종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지 48일째인 130, 인조는 소현세자와 남색 옷을 입고 서문을 통해 산성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항복의 순간이었다. 조선왕조 개국 245년 만에 겪는 굴욕의 순간이었다.



 

영화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궁궐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인천 논현동에서 왔다는 김정철 씨는 영화가 소설처럼 1, 2...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이했다. 원작이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인 만큼 인공적인 가상부분을 넣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흐름의 전개가 다소 느슨해 보여 중간 부분에서는 좀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청과의 화친이냐, 싸움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신하들의 말싸움도 조금은 지루했다고 평했다.

 

영화 남한산성은 원작 남한산성을 충실히 살린 영화임에는 틀임없다. 하지만 역사의 뼈아픈 순간을 필름으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영화든 소설이든 간에 침략이라는 역사의 순간에 서서 어느 쪽이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지도자는 비단 인조임금에 국한 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영화를 통해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아니 그 이전에 그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는 지도자가 현명한 지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