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메뚜기떼의 습격은 조선시대에도 흔했던 일이었지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메뚜기떼’를 뜻하는 “황충(蝗蟲)”이란 말이 무려 246번이나 등장합니다. 특히 《태종실록》 태종 8년(1408년) 7월 17일 치 기록에는 “예조에서 포제(酺祭)를 행하는 의식(儀式)을 아뢰었다.”라는 내용이 있는 등 포제(酺祭, 사람과 곡식을 해치는 포신(酺神)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냈다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심지어 백성사랑이 남달랐던 세종은 1444년 충청도 공주(公州)에 황충(蝗蟲)이 곡식을 해친다는 상소가 올라오자 군사들을 출동시켜 잡게 하였는데, 잡은 것이 60여 석(석=섬, 한 말의 10배)이나 되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나라에서까지 황충 잡기에 나선 것은 물론 황충의 피해가 컸기 때문이었지만 또 한 가지는 그때 백성들이 황충을 많이 죽이면 화기(火氣)를 거스른다 하여 황충 잡기를 꺼려했기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