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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장원급제자 16명이 거쳐 간 최고의 연구기관 집현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4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종 때는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고, 큰 학문적 성과도 이룩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는 집현전(集賢殿)이 그 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집현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문 연구기관인데 조선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연구와 책을 펴내는 등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집현전이라는 이름은 고려 인종 때 처음 나왔고 조선 정종 때도 집현전이 있었으나 유명무실한 기구였지요. 그러나 세종은 집현전을 완전한 국가기관으로 승격시켜 학문의 중심기구로 삼는 한편, 학문과 품성이 뛰어난 최고의 젊은 인재들을 모았습니다.


 

집현전은 세종이 임금 자리에 오른 다음해인 1420년에 설치되어 세조 2년까지 약 37년간 존속하였지요. 집현전에는 모두 96명의 학자가 거쳐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국조방목(國朝榜目)의 기록에 따르면 집현전 학자들은 정인지를 비롯한 장원 급제자가 무려 16명이나 되었으며, 전체 집현전 학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명이 과거시험 5등 안에 합격한 그야말로 이 시대 으뜸 수재들이었습니다.

 

세종과 왕자공주에 의해서 이루어진 훈민정음 창제를 빼고는 훈민정음 반포와 정착, 그리고 그와 관련한 사업인 용비어천가주해, 사서언해, 향약집성방, 삼강행실도, 자치통감, 국조오례의같은 책 펴냄과 같은 업적도 모두 집현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요. 집현전이 있었던 곳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과 가까운 곳이 없습니다. 이는 세종이 집현전 곧 학문 연구에 큰 관심이 있었음은 물론 세종이 학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했고, 집현전의 연구 성과를 나라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