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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 손해보고 살기

[서평] 《인생의 밀도》, 강민구, 청림출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인생의 밀도>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에는 3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해오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 온 강부장의 깊이 있는 인생 사유가 펼쳐집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는데, 강부장의 직접 소개말을 들어보지요.


인생의 밀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살아가는 것은 변한다>에서는 디지털 혁명을 맞아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조망하고, 그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2<살아남은 어떤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전해주는 이질적인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지요. 3<변화하고, 변화되고, 변화시켜가고>에서는 대한민국 사법정보화의 기틀을 만드는데 동참했던 그 시절의 역사를 반추해 현재의 귀감을 찾고자 했습니다.


판사가 디지털 혁명을 얘기하니까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강부장은 본인 말마따나 대한민국 사법정보화의 기틀을 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스티브 강스입니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얘기지요. 유투브에 들어가면 넓게는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에서의 대응과 전략에 대해, 좁게는 에버노트 활용법, 오피스렌즈 활용법 등에 대해 강부장이 강의를 해놓은 여러 동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강부장이 부산지방법원장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한 고별강연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동영상은 지금 들어가보니까 조회수가 1,266,820회로 나오네요! 판사 중에서, 아니 법조인 중에서 이 정도의 유투브 조회수를 기록한 사람은 강부장이 전무후무 할 것입니다. 강부장은 제 대학동기입니다. 강부장 덕분에 저희 대학동기들은 강부장이 인터넷 세상에서 수집해온 귀중한 정보들을 편하게 앉아서 받아먹기도 하지요. 강부장! 그 동안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아먹기만 했으니, 미안하오! 그리고 정말 고맙소!


그런데 책 제목이 왜 인생의 밀도일까요? 강부장은 들어가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누구나 비중 있고 영향력이 큰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바라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이미 성장해버린 몸의 크기를 키울 수도 없고,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수명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장수한다고 해서 모두 의미있는 인생인 것도 아니다.

 

방법은 간단하다. 삶의 질량을 늘리는 방법은 그 밀도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에 달려 있다. 부피가 일정하다면 밀도가 클수록 그 물체의 질량은 커진다. 질량이 크면 그만큼 힘도 강해진다. 우리 인생의 힘은 질량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렸고, 결국 그 밀도를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렸다.“


아하! 그래서 인생의 밀도군요. 강부장은 정말 인생을 밀도 있게 사는 사람입니다. 창원지방법원장과 부산지방법원장 시절 강부장은 그 바쁜 공무 속에서도 <창원 이야기>, <부산법원통신>이라고 하여 3년간 모두 17권의 책을 온라인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게 다 직원들 시켜서 만든 것이 아니라 혼자서 자투리 시간 이용하여 만들어 낸 것입니다.

 

강부장은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즐기는데, 산책 중에 명상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 그때 에버노트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하여 입력하고, 사진도 찍어 그 자리에서 글에 집어넣어 편집합니다. 관련 자료들도 그 자리에서 인터넷 서핑하여 집어넣고요. 스티브 강스이니 이 정도는 능숙하게 할 수 있겠지요? 저보고도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으로 산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강부장이야말로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다보니 강부장이 디지털에만 강한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겠는데, 강부장은 아날로그에도 강한 사람입니다. 책에서도 4장을 아예 <아날로그가 먼저다>라는 제목으로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지요. 강부장은 매년 차의 명소나 절집을 찾아다니는 차()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강부장 사무실에 들어가면 무슨 전통찻집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강부장은 조정 잘 하는 판사로도 유명한데, 조정할 때 강부장은 양쪽 당사자들을 자기 방으로 불러 차분한 명상음악 등을 들려주면서 차를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 등 다양한 인생 경험을 들려주면, 대개 당사자들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강부장이 권하는 조정안을 받아들이곤 하지요.


적자생존(適者生存,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체가 살아남는다)’이란 말 아시지요?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서 더욱 잘 알려진 말인데, 강부장은 이를 跡者生存으로도 새기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하면 흔적을 남기는 자가 생존한다는 뜻일 텐데, 강부장은 기록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부장은 이번 책에서 기록으로 살아남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김구의 백범일지, 님 웨일즈의 아리랑과 정약용의 둔필승총(鈍筆勝聰)등을 예로 들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강부장은 자신이 바쁜 업무 속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원칙과 요령을 얘기합니다. 첫 번 째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일단 써야 한다고 합니다. 미려하면서 밀도 있게 쓰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일단 첫 문장을 떼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들이 자기들끼리 밀고 당기며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첫문장은 다음 문장을 부르고, 둘째 문단은 스스로 살아 움직여 첫문단의 논리를 보강하고...


오호라!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동지를 만난 듯이 기뻤습니다. 어쩜 나랑 그리 똑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도 일단 첫 글자를 타이핑하기 시작하니 처음 제가 머리 속에 구상한 것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밀고 당기며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어서 강부장은 생각을 잘 하는 것, 첨단기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 넉넉한 편집과 퇴고의 시간을 얘기합니다. 바쁘다는 사람이 넉넉한 편집과 퇴고의 시간을 얘기하니까 좀 모순되지 않나 할 줄 모르겠는데, 강부장은 일단 쓴 다음 시간을 두고 차차 다듬어 나가다 보면 생각 또한 함께 다듬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글을 만들고 글이 다시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생각근육이 단련된다고 하네요.


물론 강부장은 다양하면서 깊이 있는 독서도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부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반드시 책을 사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매주 서점에 가보기를 권합니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서점에 서서 요즘 어떤 책들이 나오는지, 사람들은 어떤 책을 주로 선택하는지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나요. 크으~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책을 강조하는 강부장에게 또다시 동지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네요.


동지애를 느끼는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강부장은 생각의 힘은 육체의 힘에서 비롯된다면서 소식(小食)과 영양분의 균형과 함께 규칙적이고 적절한 운동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운동기구를 구입하거나 체육관을 다니지 않더라도 하루 만 보 걷기,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기, 귀찮을수록 한 걸음 더 움직이는 행동을 습관하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요즘 하루 만 보 걷기, 계단 이용하기를 실천하는 저로서는 여기서 또 동지애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거 강부장이 책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계속 들춰내다보면 한이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강부장의 좌우명만 얘기하고 마치겠습니다. 강부장의 좌우명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입니다. 그렇기에 강부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통신(IT) 지식이나 자신이 인터넷에서 손품 팔아 찾아낸 귀중한 자료와 정보들을 아낌없이 주위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강연 자료들을 유투브에 올려 수많은 사람들이 나눠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누어주는 강부장은 適者生存을 조금 비틀어 이를 積者生存이라고도 하네요. 강부장은 더 나아가 재능을 기부하고 선을 베푸는 것에서 나아가 좀 손해보고도 살라고 합니다. 상대가 만족한다면 적자를 감수하는 것도 살아가는 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네요. 그래서 강부장은 適者生存을 조금 더 비틀어 赤字生存이라고도 합니다.


평소 강부장의 아낌없이 나눠주는 행동의 덕택을 많이 보아오던 저는 오늘 또 강부장의 인생의 밀도덕분에, 저 자신의 인생의 밀도도 한층 더 탄탄해질 것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강부장! 아니, 여보게! 민구! 자네 덕분에 내 인생의 밀도가 한층 더 탄탄해지려하니, 이 또한 어찌 기쁘지 않으랴. 자네의 좌우명을 본받아 나 또한 그런 積者生存아니 赤字生存의 삶을 살아가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