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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세상에 도둑이 날뛰지만 나는 걱정이 없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4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姦宄無常産(간귀무상산) 간사한 도둑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데다

   飢荒又一時(기황우일시) 기근과 가뭄이 올해도 이어지는 때라서

   近村聞警急(근촌문경급) 이웃 마을의 위급한 소식 들어보니

   相識有創夷(상식유창이) 알고 지내는 이들도 약탈을 당했다네

   自幸囊中淨(자행낭중정) 다행이려니 주머니 속이 깨끗하니

   應無棟上窺(응무동상규) 응당 대들보 위에서 엿보는 사람 없으리라

   穿墉何足磔(천용하족책) 좀도둑들이야 어찌 죽일 게 있으리

   城社有狐狸(성사유호리) 도성과 종묘에 여우와 살쾡이 있으니

 

<도(盜, 도둑질)>라는 제목의 이 시는 조선 중기 인조 때의 문신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 ~ 1647)이 1628년 충주목사에서 파직되어 택풍당(澤風堂)으로 물러난 여름에 지은 것입니다. 온 세상에 도둑이 날뛰어 흉흉하지만 자신은 주머니가 깨끗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지요. 이식은 1618년 폐모론(廢母論, 선조의 왕비이며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비하자는 대북파 이이첨 등의 주장)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남한 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지요. 1642년에 척화(斥和)를 주장한 탓에 심양(瀋陽)으로 잡혀 갔다 돌아와, 대제학과 이조 판서 등을 지냈습니다.

 

 

택당은 정조 임금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우리나라의 명망이 있는 집안으로는 먼저 덕수(德水) 이씨(李氏)를 꼽는다. 도학으로는 율곡(栗谷)이 있고, 장수의 지략과 충의로는 충무공이 있고, 문장으로는 용재(容齋) 이행(李荇)과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있다.”라고 기록한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지요. 그뿐만 아니라 《인조실록》에서도 “문장은 이식이 제일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이식(李植)은 당대에 이미 이름을 떨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