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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글 읽는 소리와 베 짜는 소리, 이덕무 한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4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紅葉埋行踪(홍엽매행종)  단풍잎이 발자국을 묻어 버렸으니

     山家隨意訪(산가수의방)  산속 집을 마음 가는 대로 찾아가네.

     書聲和織聲(서성화직성)  글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와 어울려

     落日互低仰(낙일호저앙)  석양녘에 서로 낮았다 높았다 하네.

 

이는 영ㆍ정조 때의 실학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년~1793)가 지은 한시 「절구絶句」 이십이수(二十二首)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는 산속에 사는 삶의 한적함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단풍잎이 발자국을 묻어버린 어느 가을날 남정네의 글 읽는 소리와 여인네의 베 짜는 소리가 석양녘에 서로 높았다 낮았다 하며 가슴에 다가옵니다.

 

이덕무는 박학다식하고 고금의 기이한 글에도 정통했으며,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과 더불어 청나라에까지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서자였기 때문에 크게 등용되지 못하였지요. 그는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여 서얼 출신의 뛰어난 학자들을 등용할 때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이덕무는 사회 경제적 개혁을 주장하기 보다는 고증학적인 학문을 바탕으로 훗날 정약용, 김정희 등에 학문적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덕무는 가난하여 책을 사 볼 수 없었으나, 평생 동안 읽은 책이 거의 2만 권이 넘었고, 그가 쓴 책은 10여 권이 넘는데 “나의 글이 진귀하지 못한 것이라, 한번 남에게 보이면 사흘 동안 부끄러워진다. 상자 속에 깊숙이 넣어 두었는데 스스로 나올 날이 있을 것이다.”하여 처음 쓴 책 의 이름을 《영처고(嬰處稿)》라 하였습니다. 그가 쓴 책을 보면 《청장관고(靑莊館稿)》,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사소절(士小節)》, 《청비록(淸脾錄)》, 《기년아람(紀年兒覽)》 따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