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우리문화편지

내일 장인환ㆍ전명운, 스티븐스 처단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4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특별한 학식이 없어 나라를 별달리 보국할 방책이 없으나 언제든지 우리나라가 일본을 대하여 독립전쟁을 개시하는 날에는 나는 반드시 칼을 차고 총을 메어 떨어지는 날 가을 풀에 말머리 행오(行伍) 앞에서 나의 한 창자 더욱 피를 솟을 뿐이다.” 이는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광분하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의사가 한 말입니다. 장인환 의사는 111년 전인 1908년 3월 23일 전명운 의사와 함께 스티븐스를 총으로 응징했습니다.

 

“한국에는 이완용같은 충신이 있고 이토 같은 통감이 있으니 한국에 큰 행복이요 동양에 다행이다. 내가 한국 형편을 보니 광무황제께서 실덕(失德)이 태심(太甚)하고 완고당들이 백성의 재산을 강도질하고 백성이 어리석어 독립할 자격이 없으니 일본서 빼앗지 아니하면 벌써 아라사에 빼앗겼을 터이라고 일본 정책을 도와 말하며 신문에 낸 것이 사실이니 다시 정오할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스티븐스를 장인환ㆍ전명운 의사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스티븐스가 일본 정부와 한국 통감부의 특별 밀명을 띠고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 정거장에 도착, 승용차에서 내려 페리빌딩에 들어서려는 순간 육혈포라 불리던 권총을 들고 대기 중이던 전명운 선생이 먼저 앞으로 다가서며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되었고 대신 총대를 잡고 총머리로 스티븐스의 얼굴을 맹타합니다. 그 뒤 이어서 장인환 의사가 방아쇠를 당겨 치명상을 입혔고 25일 뒤 죽었습니다.

 

이후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일본은 두 사람이 법정 최고형을 받도록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전명운 의사는 공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석방되었고 장인환 의사는 ‘애국적 환상에 의한 2급 살인죄’(Insane Delusion)로 25년형이 선고됐는데 장인환 의사는 미주 한인들의 지원과 모범적인 수형 생활로 1919년 가석방되었지요. 정부는 장인환 의사에게는 1975년, 전명운 의사에게는 1994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