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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옛 고구려 도읍지를 가다, 아! 고구려

백두산과 고구려역사기행(2)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단둥시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랴오닝성 통화현 환인시를 통과했다. 입담이 보통이 아닌 가이드의 얘기를 귀로 들으며 눈은 줄곧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짙은 녹색의 우리나라 6~7월 산악풍경과 비슷했다. 다만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를 자주 볼 수 있고 들판엔 논은 보기 힘들고 옥수수밭이 많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고구려의 땅이었고 발해의 땅이었으며 독립운동가의 애환이 서린 땅이다. 갑자기 "창밖을 보세요."라는 가이드의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저 멀리 나타난 신비롭게 생긴 직사각형 탁자 모양의 '오녀산성'!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 부여를 떠나와 고구려를 건국하며 첫 도읍지로 세운 졸본성! 아름다웠다. 천혜의 자연요새였다. 사진 한 장 남기고 일정상 먼발치에서 조망하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였던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국내성'에선 시간 여유를 갖고 걸었다. 국내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쪽으론 압록강이 흐르는 도읍지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주몽의 첫부인 예씨부인이 낳은 유리왕자가 단검 반쪽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와 2대 임금이 되고 도읍지를 국내성으로 옮긴 때가 기원후 3년이라고 한다. 그 이후 19대 광개토대왕까지 424년간,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다.

 

장수왕릉, 광개토대왕릉 그리고 가운데 광개토대왕비가 일정거리를 두고 있었다. 광개토대왕비의 네면에는 고구려건국역사와 우리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일궈낸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새겨져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비는 유리벽 속에 갇혀 있었고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다. 하물며 비 근처에서 대왕의 업적에 대해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저 중국 동북쪽 변방의 '고구려'라는 작은 나라의 임금의 비석이라고 설명하는 중국 안내원의 설명만 이어지고 있었다.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중국의 동북지역 곧 만주대륙의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의 지방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이라나?

 

하지만 영구히 썩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을 돌비석에 진실이 쓰여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비석에는 임금의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들이 너무 고달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당부와 함께 묘지기에 관한 법령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대왕의 릉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일반 범부의 무덤도 몇 년에 한 번씩 봉분을 돋우건만 대왕의 릉이 이처럼 버려져 있다니 통탄할 일이다.

 

 

 

 

여기서 한참을 걸으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장수왕릉'(장군총)이 있건만 일정에 쫒겨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장군총 또한 오녀산성 못지않게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가히 '동양의 피라미드'라 할만 했다. 장군총 너머로 700여기의 무덤군도 있다는데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해서 아쉬웠다.

 

그리고 단둥시 북쪽에 있는 해발144m의 고구려 관련 산성을 비지땀을 흘려가며 올랐다. 본디 '박작산성'이라 불리던 고구려산성 이었으나 중국이 '동북공정'의 하나로 부시고 덧씌우고 증축하여 어마어마한 중국식산성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치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다. 만리장성의 동쪽 시발점이라고하며 이름은 '호산장성'이라고 써놓았다. 만리장성으로부터 무려1,000km나 떨어져있는데도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남북이 분단만 되지 않았어도 이렇게 역사왜곡을 눈 뜨고 보고만 있질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 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