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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매국노들에 의한 고종황제 강제 퇴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7년 7월 16일 매국노들이 주도한 내각회의에서 마침내 황제 폐위가 결정되었고, 이를 안 고종은 ‘짐은 죽어도 양위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나 이등박문의 사주를 받은 송병준이 수백 명의 일진회원들을 동원하여 궁궐을 에워싸고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지요. 고종은 계속 버티면서 황태자를 비롯한 다수의 궁내관들과 신하들을 배석케 했지만 송병준은 이들을 모두 물리쳤으며, 법부대신 조중응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전화선들을 모두 끊은 뒤 양위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다음날 새벽 5시에 이르러 고종은 황태자 대리 조칙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종은 분명히 황태자 대리를 선언한 것이지 양위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제는 7월 20일 아침 9시 서둘러 양위식을 거행했지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즉위식인데 양위식은 고종과 순종 황제가 직접 참석하지 않고 내관이 이를 대신하는 권정례(權停例)로 치른 엉터리였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종로를 비롯한 도성 곳곳에는 “임진난을 보라, 을미년의 일은 어떠했던가! 일본인의 포학은 그칠 줄 모르니 우리들의 도탄은 눈앞에 도달했다.”라는 전단이 붙기 시작하였지요. 또 도성 안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통곡이 이어지고 일본인들을 공격하는 폭동 사태가 일어난 것은 물론 이완용의 집이 불태워졌으며, 통감을 저격하려 하는 저항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위 군중 2천여 명은 일진회 기관지인 국민신보사를 습격하고, 그중 일부는 경운궁 대한문 앞에 수백 명이 꿇어앉아 황제에게 결코 양위하지 말라고 애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극렬히 저항했지만 일본군의 총칼 앞에서 대한제국은 맥없이 무너지고 1910년 8월 29일 통한의 경술국치가 일어나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