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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반나절이나 무안했었네

주돈이 ‘애련설’부터 허난설헌의 ‘채련곡’까지
[솔바람과 송순주 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이란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도 없는…….

 

송나라 때의 신유교철학, 곧 성리학의 비조라고 할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묘사한 연꽃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데, 주돈이는 꽃의 덕을 견줘 설명하면서도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로다

 

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아 모란을 좋아할 것이지만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좋아했고, 자신은 이제 연꽃을 좋아한다고 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주돈이란 분이 원래 “인품이 매우 고결하고 마음결(胸懷)이 쇄락(灑落:깨끗)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는 평을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들은 분이다.

 

여기서 ‘광풍제월’이란 말은, 글자그대로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곧 그런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서, 조선시대의 숱한 선비들이 이 글귀를 혹 정자에 편액으로 써서 걸며 그 경지에 이르기를 노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돈이란 분이 원래 자연을 바라보고 그 가운데서 도(道)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고결한 선비였기에 과연 그는 연꽃과 같은 존재였고, 그런 사람이기에 연꽃이 꽃 중의 군자로 보일 터이다.

 

그러나 원래 연꽃은 불교에서는 신성시하여 부처님의 좌대를 연꽃 모양으로 수놓아 이를 '연화좌'라 부르는 등 존경하는 풍조가 있었고, 우리나라의 심청 설화에서도 심청이 연꽃 속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고려조에 와서 불교신앙이 절정에 이름에 너무나 신성시한 나머지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고려도경》이란 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高麗蓮根花房 皆無敢擷(힐) 國人謂 其爲佛足所乘云

고려에서는 연꽃과 꽃밥을 감히 아무도 따지 못했는데,

그것은 부처가 그것을 밟고 하늘로 오른 때문이란다.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연꽃을 둘러싼 민간전설이나 설화도 불교를 떠나서는 별반 없는 상황인데 다행히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의 일화가 하나 전한다. 충선왕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어머니이니, 쿠빌라이의 외손자가 되는 셈인데, 아버지 충렬왕과의 왕위다툼과정에서 원나라의 수도에 불려가 있을 때에 한 아가씨와 애정이 짙어졌다. 충선왕이 곧 고려로 돌아가게 됨에 그녀에게 사랑의 징표로 연꽃을 한 송이 꺾어 주었더니, 그 아가씨가 이별의 아픔을 담아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고 한다.

 

贈折蓮花片 初來灼灼紅  꺾어 보내신 연꽃 처음에는 빨갛더니

辭枝今幾日 憔悴如人同  며칠도 되지 않아 사람처럼 시들었네

 

사랑을 잃은 자신이 시든 꽃처럼 되었다는 기막힌 표현이다.

 

 

중국인들도 우리처럼 연꽃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원래 연꽃을 좋아한 것은 오래 전 부터로서, 공자가 중국의 고대 시가를 모아 펴낸 《시경詩經》 가운데 <못 뚝(澤坡)>라는 시를 보면

 

더 연못 뚝 너머엔 부들과 연꽃

아름다운 님이시여! 멋지고 훌륭하고 의젓한지고

자나깨나 아무 일 못하고 베개에 머리만 묻네

 

라고 해서 연꽃이 핀 못에 와서 바라본 멋진 남자에 대한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묘사한 것이 전해질 정도이다. 특히 기후가 온화한 양자강 남쪽에는 이 연꽃이 피는 데가 많아서, 항주지방을 대표하는 미인인 서시(西施)가 일찍이 처녀 때에 경호(鏡湖) 부근의 약야계(若耶溪)라는 데서 연꽃을 따러 나오면 젊은 청년이랑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몰려나와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는 것인데, 중국의 시선(詩仙)으로 유명한 이백(李白)이 <자야오가(子夜吳歌)>라는 시에서

 

鏡湖三百里 경호삼백리에

菡萏發荷花 연꽃이 만발하였구나

五月西施採 오월에 서시가 연꽃을 딸 때면

人看溢若耶 그녀를 보기위해 약야계곡이 넘치건만

回舟不待月 달뜨기를 기다리지 않고 배를 돌려서

歸去越王家 월왕가로 돌아가는구나

 

라고 연꽃 따는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 그런데 사실 연꽃과 관련해서는 이백의 시 <채련곡(採蓮曲)>도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유명한데

 

若耶溪傍採蓮女  약야계 가에서 연꽃 따는 아가씨들

笑隔荷花共人語  웃으며 연꽃 사이로 서로 이야기하네

日照新粧水底明  새로 화장한 얼굴에 해 비추어 물밑까지 환하고

風飄香袖空中擧  향기로운 소매 바람 불어 허공으로 날리네

岸上誰家遊冶郞  언덕 위 멋진 저들은 뉘 집에서 왔는가

三三五五映垂楊  삼삼오오 버드나무 사이로 비추어 보이네

紫騮嘶入落花去  자류마 울면서 떨어지는 꽃 속으로 사라지니

見此躊躇空斷腸  이를 보고 머뭇머뭇 공연히 애만 태우네

 

라고 해서 아가씨들이 연꽃을 따라 나왔다가 멋진 남자들을 발견하고 가슴조이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중국에서 음력 5월 이후 연꽃이 피면 연꽃을 땁네, 연밥을 땁네 하며 여인네들이 바깥나들이를 나와서 또래의 남정네들을 보며 가슴을 졸이고 때로는 못 이룬 사랑을 애닲아하는 그런 시절인 모양이다.

 

실제로 당나라에서는 매년 음력 6월 연꽃이 활짝 필 때를 기다려 꽃을 감상하는 풍속이 있었고, 또 매년 음력 6월 24일, 연꽃이 완전히 핀 때를 관하절(觀荷節) 또는 하화생일(荷花生日)이라고 하여 벗들과 연인들이 무리를 지어 연등을 만들어 연꽃이 심어져 있는 연못에 모여 불 밝혀 물 위에 띄우며 놀곤 했다고 한다(중국에서는 연이란 식물을 荷(하)라는 글자로 주로 표현한다). 항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회계(會稽), 곧 오늘의 소흥(紹興) 출신으로 이백의 천재성을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한 하지장(賀知章, 659~744)도 자기 고장의 연꽃이 핀 형상을 묘사하되

 

稽山罷霧鬱嵯峨  안개 걷힌 회계산은 울창하고도 높아

鏡水無風也自波  거울같이 맑은 물은 바람 없이도 물결인다.

莫言春度芳菲盡  봄이 지나 꽃다운 풀 없다고 말하지 말라

別有中流采芰荷  가운데 흐르는 물에 마름과 연밥 딸 것 있단다.

 

라며 맑고 아름다운 꽃을 칭송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채련곡이란 시 형식이 생겼는데,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채련곡이 다투어 쓰인다.

 

채련곡(採蓮曲)

 

미인의 아리따운 손으로 연꽃을 따니 美人素手採蓮華

꽃도 붉은 뺨 같고 뺨도 꽃 같은데 花如紅頰頰如花

중류에서 노 흔들며 오가를 부르도다 中流蕩槳唱吳歌

 

오가를 불러라 唱吳歌

석양은 나직한데 落日低

물결이 아득하여 波渺渺

돌아갈 길 희미하구나 歸路迷

 

..... 상촌 신흠(申欽, 1566~1628)

 

상촌은 또 이런 채련곡도 썼다;

 

동쪽 집의 소녀가 버선도 신지 않고          東鄰女兒脚不幭

서리같이 하얀 발로 시냇가를 걸어가네     兩足如霜踏溪渚

시냇머리서 노 흔드는 어느 집 총각이       溪頭蕩槳誰家郞

연꽃을 꺾어주며 웃고 서로 얘기하다가     手折荷花笑相語

어디론가 배를 타고 함께 가더니               移舡同去不知處

별포에서 원앙 한 쌍으로 갑자기 나타나네 別浦驚起元央侶

 

 

그야말로 연꽃밭은 사랑의 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묏버들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라는 시조로 유명한 기생 홍랑(紅娘)의 애인인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1539~ 1583)도

 

강 언덕 길고 긴데 휘늘어진 능수버들 水岸悠悠楊柳多

연 따는 노랫가락 조각배에 요란터니  小船爭唱采菱歌

붉은 꽃도 다 져서 서풍은 차가웁고    紅衣落盡西風冷

해 저문 물가엔 흰 물결만 일어나네    日暮芳洲生白波

 

라고 했고, 퇴계 이황의 제자인 이달(李達)도

 

연잎은 들쭉날쭉 연밥은 주렁주렁              蓮葉參差蓮子多

연꽃 서로 사이해서 아가씨가 노래하네       蓮花相間女郞歌

돌아 올 땐 물목에서 벗 만나자 기약했기에  歸時約伴橫塘口

고되이 배 저어 거슬러 올라가네                 辛苦移船逆上波

 

라고 남녀 사이 정회를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채련곡 가운데 백미는 여류시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이 지었다는 것인데.

 

秋淨長湖碧玉流 가을 긴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係蘭舟 연꽃 깊은 곳에 목란배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

라고 여인의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원래 중국처럼 자연호수가 그리 많지 않아 사람들의 힘으로 늪을 파고 연을 길렀는데, 문일평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도 예전에는 남문 밖에 연지(蓮池, 연못)가 있었고, 서문 밖과 동문 안에 연지가 있었으며, 각 성읍에도 반드시 이러한 연지들이 있어 화재 등 불의의 재난을 방지하는 한편 풍경의 멋을 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유명한 것이 상주 함창의 공갈못, 수원 방죽 연, 해주의 부용당의 연이 유명하였다고 하는데, 그 증거로는 상주지방에 전해오는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애기

연밥줄밥 내 따줄게 요 내 품에 잠들어라

잠들기는 늦잖아도 연밥따기 한 철일세

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7월도 하순으로 접어든 요즈음이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연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는 때인데 공교롭게도 장마가 끼어 사람들의 관심이 아직 연꽃으로 가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전라남도 무안에서 대규모 연못을 조성해서 연꽃축제를 벌이는 등, 환경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연꽃가구기가 전국적으로 일대 붐을 이루고 있는데 수도권에 사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양수리에 있는 세미원(洗美苑)이란 연꽃단지이다.

 

"물을 보면서 마음을 닦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장자의 말에서 이름을 따서, ‘우리문화 가꾸기’라는 사단법인이 조성한 이 연꽃단지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치는 양수리 두물머리와 양수대교 및 퇴적지 십 수만 평(평이란 단위를 쓰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이 평방미터로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를 대규모 연꽃단지로 바꾼 것인데, 요즈음 그야말로 제철을 만나서 그 화려한 색상과 고고한 자태, 은은한 향기가 천리를 멀다 않고 퍼지고 있으며 특히 밤에는 그 향기가 더 기가 막힌다.

 

이곳에 가면 스스로를 서시라고 생각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뿐 아니라 서시가 되고 싶은 여성들, 그리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젊은 남자들이 짝을 이루거나 짝을 찾아 자주 온다. 그것이 아니라도 활짝 핀 연꽃을 보며 그 꽃잎의 결을 보면서 우리의 성품을 드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