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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솔바람 피서법

왼손엔 책, 오른손엔 거문고
[솔바람과 송순주 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집집마다 더위에 지쳐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이럴 때에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는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근 채로 갖고 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으뜸일 것이다.

 

“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그러나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이 있어서 물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만큼 뭔가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가 극심하면 바람이 잘 부는 나무그늘에 갔다고 한다. 옛날에는 활엽수가 우거진 곳보다는 침엽수, 곧 소나무가 있는 곳이 더 바람을 잘 전해주어 시원했던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곧 소나무 숲에서 솔잎사이로 부는 바람이 이른바 ‘풍입송(風入松)’이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풍입송의 경지를 무척 즐겼던 것 같다.

 

 

앞머리 김수장의 시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풍입송이란 단어가 그것이다. '풍입송'이란 말은 시원한 바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시원한 기분을 표현하는 노래였고 거문고 연주곡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송강 정철이 25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처가가 있던 담양에 서하당과 식영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그 완공을 기념해 지은 '성산별곡'이란 가사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風入松)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이 글을 보면 당시 '풍입송'이란 곡이 거문고 곡으로 있어 사람들이 즐겨 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듣기 좋은 곡이면 듣다보니 누가 주인인지 누가 손님인지도 모를 경지가 되는 것일까?

 

조선시대 이경윤이란 화가가 남긴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라는 그림이 있다. 절벽과 바위가 시원스러운 어느 산자락, 선비 한 분이 무릎에 거문고를 올려놓고 둥근 달 아래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광경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심부름하는 어린이가 아마도 차를 끓이는 듯하다.

 

 

그런데 그 선비가 타는 거문고에는 줄이 없다. 이른바 ‘무현금(無絃琴)’이다. 이 선비는 이미 손끝에서 나오는 현의 소리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다. 옛 선비들이 거문고를 즐기는 뜻은 단순한 기예의 연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도를 배우고 터득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무한한 악도(樂道)를 얻는 것이기에 이미 소리를 초월하는 정신세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이 없어도 이미 천 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무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靑山不墨萬古屛 청산은 먹으로 그리지 않아도 만고의 병풍이요

流水無絃千年琴 흐르는 물은 줄이 없어도 천년의 거문고일세.

 

그러기에 선비들은 마음으로 무현금을 타면서 스스로 취했다. 거문고를 곁에 두기만 해도 무더위는 없어진다.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도 그런 사람이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樂)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시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오히려 거문고 하나를 간직하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이어서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陶淵明)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어 그에 의해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반드시 옛 사람을 본받아야 하겠는가?”《東國李相國集》

 

이런 기분은 중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진(晉)의 헤강(嵆康)이 쓴 <풍입송가(風入松歌)>란 제목의 한시가 전해져 온다.

 

西嶺松聲落日秋 가을 해지는 서산에 소나무소리

千枝萬葉風飄飄 가지마다 솔잎들 바람에 휘날리누나

美人援琴弄成曲 미인이 거문고 당겨 곡을 연주하니

寫得松間松聲斷 소나무 사이로 문득 끊어진 듯

續聲斷續淸我魂 끊어지듯 이어지며 혼을 씻누나 ....

 

 

 

워라벨(Work-life balance)이라고 해서 일과 휴식의 높이를 맞출 수 있는 때이긴 하지만 우리 직장인들, 어차피 마음 놓고 휴가를 다녀오기도 쉽지는 않다. 풍광 좋은 계곡에 철썩 발을 담그는 것도 자연보호를 위해서는 참아야 할 일이다. 이럴 때의 피서법으로 옛 선인들처럼 거문고를 들고 나가면 좋겠지만 이제 거문고라는 악기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귀한 만큼 그 또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집안에 유명 연주가가 연주한 거문고 산조를 틀어놓고 들으면서 손에는 책을 들고 독서삼매에 빠지는 것이다. 소극적인 피서법이긴 하지만.

 

옛말에 '좌서우금(左書右琴)'이라 했다고 한다. 왼 손에는 책을 들고 오른손에는 거문고를 들어야 선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메마른 생활을 푸근하게 적셔주고 더위를 잊게 하는데 거문고 음악이 좋을 것 같다. 올해 복더위는 거문고 음악을 들으며 독서하는 것으로 이겨내는 것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