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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봉오동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홍범도 장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5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도(天道)가 순환하고 민심이 응합하야, 아(我)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후 상(上)으로 임시정부가 유하야 군국대사를 주하며, 하(下)로 민중이 단결하야 만세를 제창할 새 어시호(於是乎) 아(我)의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독립군이 출동되었도다(…)당당한 독립군으로 신(身)을 탄연포우(彈煙砲雨) 중에 투하야 반만년 역사를 광영케 하며, 국토를 회복하야 자손만대에 행복을 여(與)함이 아(我) 독립군의 목적이오 또한 민족을 위하는 본의라.”

 

 

이는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1919년 12월 대한독립군 대장으로서 공포한 유고문(諭告文)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151년 전인 1868년 오늘(8월 27일)은 홍범도 장군이 태어난 날입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그린 것처럼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은 최진동과 안무 장군의 대한북로독군부군, 그리고 이흥수가 이끄는 대한신민단과 연합하여 대승을 거두었지요. 1920년 12월 25일치 <독립신문>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사살되고 수많은 인원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독립군측은 4명의 전사자에 2명의 중상자만을 내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장군과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 1,2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독립군 통합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간도토벌대와 격전을 치르면서 1921년 1월 하순 우수리강을 건너 러시아령 자유시로 들어갔다가 자유시사변으로 불린 한인 무장세력 간의 분쟁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독립군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 뒤 홍범도 장군은 집단농장 등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한인동포들의 권익보호에 힘쓰다가 1937년 9월 스탈린에 의한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