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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 ‘우츠노미야 겐지’

[맛있는 일본이야기 50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차별과 빈곤에 맞서온 인권 변호사 우츠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 73살) 씨는 요즘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의 피해회복이 문제의 핵심인데 당사자 없이 국가 간에 전부 결정을 내려 버렸습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지하게 반성하며 행동으로 나타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을 정부와 국민이 함께 해야합니다.”

 

후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는 지난 8월 24일 YTN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베정권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반발해 수출규제와 백색 국가 제외 조치를 단행한 이후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의 지식인 들은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처럼 저마다 ‘아베정권의 철딱서니 없는 처사’에 강한 불만과 질책을 쏟아내고 있다.

 

에히메현(愛媛県)의 남서부에 있는 세이요시(西予市)에서 태어난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1946년생으로 그가 태어난 시기는 패전으로 일본 전역이 폐허 더미였을 시기였다. 그가 태어난 고향 아케하마쵸(明浜町)는 반농반어(半農半漁) 지역으로 그는 9살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오이타현(大分県)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 13살 때는 구마모토현(熊本県)에 사는 숙부 집에 맡겨지는 등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했다.

 

 

어린나이 때부터 가난을 몸소 겪은 우츠노미야 겐지는 집안을 돕기 위해 도쿄대 법학부를 중퇴하고 사법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이후 ‘대부업체 피해 전문가’로 성장한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대부업 지옥에서 탈출하는 법》이란 책을 쓰는 등 고리업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법 개정 운동을 펼치며 ‘서민의 편에 서서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대부(代父)’로 인정받았다. 2007년에는 시민단체인 ‘반빈곤네트워크’를 만들어 본격적인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가 관여한 굵직한 활동을 살펴보면, 다중채무자보호, 사형제도반대, 후쿠시마방사선철저대책요구, 표현규제반대, 선택적부부별성제도찬성(일본은 결혼하면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지만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이를 반대하고 부부가 선택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찬성), 학교에서 일본국가제창 의무화 반대, 반한(혐한)데모규제, 한국인위안부전후보상해결시에 한일공동제언을 하는 등 광범위한 범위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한 변론에 앞장서왔다.

 

특히 그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일본 내 혐한 시위 등을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점에 대해 한국인들은 그를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부르고 있다.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의 한 평생을 돌아보자니 1919년 동경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2.8독립선언 당시에 이들을 변호해주었던 후세 다츠지 (布施辰治 1880 ~ 1953) 변호사가 떠오른다.

 

후세 다츠지 변호사 역시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처럼 한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법률 변호를 맡아준 사람이었다. 2.8동경독립선언시의 변론에 이어 3·1운동 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졌던 분이다.

 

아베정권의 ‘강제징용’ 문제 대응과 수출규제 조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우츠노미야 겐지 같은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희망이요, 동시에 한국의 희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