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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은비령에 별을 묻어놓고

지도에 나오지 않은 고갯길, 은비령 이야기
[솔바람과 송순주 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디까지 가는 찬데요?」

「은비령으로 가는 찹니다」

「은비령요?」

 

사내는 그런 지명이 여기 어디 있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 살아도 모르지요? 은비령이라고.」

「처음 듣는데요, 은비령이란 얘긴.」

「한계령에서 가리산으로 가는 길 말입니다.」

「아, 거기 우풍재 내려가는 길 말이군요. 한계령 꼭대기에서 다시 인제 쪽으로 내려가는 샛길 말이지요...」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추억이 어린 은비령을 찾고 있었다.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이다. <은비령>, 신비롭게 깊이 감추어진 땅이라는 뜻의 은비령, 지도에도 없는 이름이니 어찌 그 곳이 거기인줄을 알았으랴? 그러나 역시 운명의 힘은 무서운 것,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은비령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휴가를 받기가 어려워 계곡에서의 피서를 포기하고 집에 박혀 솔잎향을 안주로 하고 솔바람을 타고 오는 거문고 소리를 술인양 들어마시려던 처량한 이 사람은, 사상 최대의 구조개편입네, 그야말로 혁명입네, 하며 회사 내의 술렁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일약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이제 취재부서의 팀장으로 나가면 좀처럼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을 터인즉, 눈 딱 감고 가자!" 해서 달려간 것이다. 목적지는 현리에서 인제 사이 내린천 변에 있는 조그만 산장 2층.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서예가의 별장 겸 펜션이란다.

 

지난밤과 낮에 내린 국지성 호우로 내린천의 물은 붉게 변해 있었다. 위력도 대단했다. 밤새 쏴~쏴~하며 부지런히 달려 내려간다. 언제나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소리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에 매연도 뿜지 않고 달려가는 누런 계곡의 물을 듣고 보는 것은 어릴 때 이후 수십 년 만에 처음이 아니던가?

 

모든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렇기에 그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데, 이 물은 무슨 힘이 있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힘차게 흘러내려가는 것일까? 낮에 무덥던 기온은 밤사이 많이 내려가 제법 춥기까지 하다. "과연 피서는 이런 데서 해야 하는 거구나...." 혼자서 습관대로 새벽에 일어나 눈앞에 검게 펼쳐진 우리의 아름다운 산천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날이 새자 우리는 꿈에 부풀었다. 간밤에 물어보니 이곳에서 조금 동북쪽으로 난 하추리 계곡에 민물고기가 많다는 것이다. 충북 진천군 광혜원이란 곳에서 살던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을 따라 숱하게 미호천 상류로 나가 천렵의 재미를 체득한 기억을 살려 이번에야말로 40년 전 아버지의 천렵솜씨도 다시 감상하고, 강원도의 깊은 산간계곡에서 잡은 민물고기 맛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계곡을 찾아 들어가 중간쯤에서 자리를 잡았으나 생각보다 물이 깊고 빠른데다가 물이 아직 흐린 상태로 물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어디에 고기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몇 번인가 시도를 했는데도 작은 모래무치 몇 마리만 그물에 들어와 도대체 장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짐을 걷어 차에 다시 싣고는, 다른 식구들에게 기왕 나온 것이니까 이 계곡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자며 운전대를 잡은 동생을 재촉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계곡은 아름다웠다. 하추리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작은 고개를 넘는 동안 잘 포장된 지방도로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은빛 그대로였다. 원래 군사도로여서 길이 넓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뒤늦게 포장한 도로는 아직도 금방 세수를 한 말끔한 청년의 얼굴같다. 은빛 개울물이 흐르도록 물길을 만들어주는 바위와 돌들은 먼지하나 묻지 않은 우리 자연의 깨끗한 속살이었다. 아무데도 차를 세우고 발을 벗어 들어가 한 움큼의 물을 손으로 담아올려 마시고 싶을 정도다.

 

조금 더 가다가 보니 현리에서 바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351번 도로와 만난다. 이 도로는 이제 한계령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간다. 계곡을 보다 문득 눈을 들어올리니 길옆으로 삐죽삐죽한, 아주 준수한 미남자 같은 봉우리들이 푸른 소나무숲 사이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지도를 보니 오른 쪽으로 점봉산이라고 해발 1,424미터의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그 줄기인 모양이다.

 

계속 오르는데 필례약수라는 간판이 보이고 큰 길에서 300미터를 더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앞자리에서 선도하는 입장에서 혼자 보고싶다고 차를 돌릴 수도 없어서 "그저 하고많은 약수 중에 하나겠지"라며 그 유명한 '여우와 신포도의 우화'(공중에 탐스럽게 익은 포도를 본 여우가 따먹으려고 여러 번 점프를 하다가 도저히 닫지가 않으니까 "저 포도는 신포도임에 틀림없어" 하며 돌아섰다는 우화)식으로 잠시 포기를 하고 계속 한계령으로 달린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차안에 탄 8명의 식구들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고갯길에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바위의 형상이 갈수록 기기묘묘하고 마치 국토순례수도를 하는 신라의 화랑들이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자신들의 늠름한 모습을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람한 고봉들의 늠름한 품세는 여기가 과연 남설악의 진수임을 입증하려는 듯하기도 하다.

 

아니 설악에 이런 진귀한 구경거리가 있었단 말인가? 옛날 내설악과 외설악을 아니 다닌 것이 아니로되 이처럼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는데, 역시 나이가 좀 들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그만큼 절절한 것인가?

 

그 샛길을 은비령(隱秘嶺)이라고 이름붙인 건 나와 그였다. 그가 죽은 다음인 지금도 그 샛길의 이름을 은비령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여자밖에 없었다. 아내에게도 나는 그곳이 은비령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나는 아내 앞에서 옛날 했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한때 집을 떠나 공부를 했던 곳에 대한 이야기도 그냥 <한계령 너머>라고 평범하게 말했다. 우리가 사이가 좋을 때에도 그랬다. <은비령>이라고 우리가 붙인 다른 이름으로 말했을 때 행여 아내가 마음속으로라도 그 꼴난 공부도 하다가 그만둔 주제에 그런 이름까지 붙이고 했었느냐고 생각할지 몰라서였다.

 

처음엔 은자령(隱者嶺)이라고 불렀다. 은자가 사는 땅. 그러다 그 보다 더 신비롭게 깊이 감춰진 땅이라는 이름으로 은비령이라고 불렀다. 내가 먼저 들어가 있었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그가 왔다. 은자령이라는 이름은 그가 오기 전 혼자 있을 때 내가 붙인 이름이었고, 함께 겨울을 난 다음 은비령으로 불렀다. 은자는 짝을 지어있거나 무리지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보다 신비롭고 깊이 감춰진 땅의 이름으로.

 

바로 여기가 은비령이었던 것이다. 지도에 전혀 나오지 않아 이름도 알 수 없었던 고갯길. 필례약수로부터 한계령 휴게소까지 5킬로미터의 길을 가기 전의 태백산맥의 고갯길. 그 전까지 지역 주민들은 그냥 한계령이라고 불렀으며, 작은 한계령, 또는 필례 약수터가 있다고 해서 필례령이라고도 부르던 것이 어느 날부터 은비령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신비롭게 깊이 감춰진 땅이라는 의미를 갖는 은비령, 그러나 나에게는 마치 여기까지 올라올 때에 보았던 계곡의 옥같은 물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린 은비(銀雨)가 흘러서 생긴 것인 양 생각되어, 두 뜻을 동시에 담는 복합의미의 단어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계령정상에서부터 고개를 내려 멀리 양양의 낙산 해수욕장에 가서 바닷물에 발을 담근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낙산 해수욕장 주변의 그 많은 차들, 훌렁훌렁 벗으며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한 많은 청춘남녀들, 그들을 바라보며 해변에서 손님도 별반 없는 횟집에서 그나마 돈을 좀 번다고 부모님과 함께 맛 본 동해안 회 맛, 해수욕장에서 밀려오는 파도 속에 바짓가랭이를 적시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본 순간들, 백사장을 주름잡는 조카들의 거리낌 없는 바닷물놀이, 강렬한 태양에 불과 한 시간 만에 팔뚝에 생긴 화상들, 뭐 그런 경험이나 이야기야 모두 다 맛보는 것이 아니던가?

 

2시간도 안 돼 차는 다시 한계령을 넘기 시작했고 기신기신 간신히 고개길을 오른 자동차는 한계령 휴게소에서 비로소 가쁜 숨을 다독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잠시 빙과류 한 두 개로 우선 갈증을 면하고 자동차는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한계령 남쪽 고개로 돌아가고 있었다. 은비령으로 다시 가고 있는 것이다.

 

한계령 정상에서 사람들은 멈춘다. 바다로 가는 이들은 그곳에서 비로소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이탈의 시간을 보내고 동해를 떠나온 이들은 벗어놓은 그 짐을 다시 지고 삶 속으로 돌아온다. 그 길로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그 버림과 되찾음을 배반할 수 없듯이 중간에 다른 길로 가지 못한다. 은비령은 그것을 배반한다. 바다를, 이탈을 향해, 한계령을 넘어 서자마자 곧바로 서쪽 방향인 필례약수로 되돌아 넘는 길. 은비령에는 이탈과 일상,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은비령에는 은비팔경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정하고 붙인 제1경은 우리가 방을 들고 있는 화전 마을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삼주가병풍>이었다. 원통에서 한계령으로 오를 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옥녀탕과 하늘벽, 장수대의 뒤편의 삼형제봉과 주걱봉, 가리봉이 화전 마을에선 병풍처럼 우뚝 막아선 앞산처럼 보였다. 모두 해발 1,200미터에서 1,500미터가 넘는, 태백산맥의 한 가지를 이루는 가리산맥의 준령들이었다.

 

제2경으로는 겨울 은비령의 눈 내리는 풍경으로 은비은비(隱秘銀飛)를 꼽았고, 제3경으로는 마을 서쪽 한석산에 지는 저녁노을로 한석자운(寒石紫雲)을 꼽았다.

 

제4경으로는 맑은 날 아침에도 구름처럼 걸쳐져 있는 우풍재의 안개, 제5경으로는 가리봉을 주봉으로 한 가리산의 가을 단풍, 제6경으로는 필례골의 흰 돌 틈 사이로 작은 폭포처럼 가파르게 흐르는 여울, 제7경으로 장작으로 밥을 지을 때 안개처럼 낮게 피어올라 바깥마당을 매콤하게 감싸는 우리 공부집의 저녁연기로 은자당취연(隱者堂翠煙)을 꼽았고, 마지막 8경으로 맨눈으로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은궁성라(銀宮星羅)를 꼽았다."

 

우리는 대낮이어서 제2경부터 3경, 4경, 5경, 7경, 8경을 모두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6경과 8경만은 볼 수 있었다. 8경이라는 것은, 사실 소설의 주인공이 붙인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명명(命名)이다. 그냥 한껏 감탄하고 말아버릴 복합적인 정경을 세밀하게 쪼개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소설가의 능력이다. 왜냐하면 '은비령'이라는 것, 이것이 소설제목이기 때문이다. 1996년에 발표돼 주목을 받은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 그 소설이 한갓 이름 없는 작은 한계령에 머물렀을 이 고갯길에 은비령이라는 신비의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주인공 나는 소설가로 아내와는 이혼 상태와 다름없는 별거 중이다. 내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마음의 소금짐이 더해지는 그 여자와의 사랑으로, 나는 그 소금짐을 덜어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격포로 예정된 길이 은비령으로 바뀌고 급기야는 별을 가슴에 담고 돌아온 여행길이었다.

 

 

여자는 내가 소설로 방향을 바꾸기 전, 은비령에서 고시공부를 함께 하던 친구의 아내였다.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이었던 친구의 행복한 아내였던 여자를 보고 나는 바람꽃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연히 과부가 된 그녀를 만난다.

 

"썰매를 타듯 은비령을 내려가는데 작은 지프 한 대가 비껴 계곡 속으로 숨어든다. 고개를 돌려 차창 밖으로 우리를 흘낏 쳐다보는 여자. 그녀에게서 바람꽃 냄새가 났다. 그 스쳐 지나간 바람꽃을 다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나는 그녀와의 결합을 마음먹고 친구가 죽은 장소인 격포로 가려 했다가 눈소식을 듣고 은비령으로 향한다.

 

"길 위에서 길을 바꾼 것도 그랬지만 여행도 처음부터 계획하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혼자 집에 있었고, 여행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물론 여러 날 전부터 마음속으로 무언가 기다려왔던 건 사실이었다. 오후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어떤 가벼운 흥분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흥분 뒤편으로 어쩔 수 없는 무게로 더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소금짐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약속은 이미 지난주에 했었다. 여자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내가 그 말을 했다. 전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 앞에서 많은 술을 마셨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들은 내가 마신 술보다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내가 잘 들어갔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직도 그렇게 말해야지만 전화를 걸 수 있습니까?」

 

눈길에서 차가 고장 나고 다음날 뒤쫓아 달려온 그녀를 만나게 된다.

 

둘은 부부로 오인한 옛 하숙집의 노인네들 때문에 한 방을 쓰게 된다. 어색한 잠자리를 피하기 위해 밤산책을 나온 둘은 밤늦게 별자리를 관측하는 남자로부터 은하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2천 5백만 년을 주기로 다시 되풀이되는 사람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자는 2천 5백만 년 후를 기약하고 혼자 떠난다.

 

“어쩌면 저는 내일 아침 당신을 보지 않고 떠날지 몰라요. 그러면 우리는 2천 5백만 년 후에야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하나하나 벗어 웃목으로 놓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어두운 하늘 빛 속에서도 여자의 몸은 희미하게 빛났다. 등을 보이고 섰다가 돌아설 때 여자의 머리카락까지 내 눈엔 바람에 흐르는 혜성의 꼬리처럼 가늘게 흔들리며 떨렸다.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한 느낌 속에서 남자도, 「바람꽃」의 여자도 2천 500만년의 시간을 느끼고, 비껴가는 운명을 잠시 머물게 하고는 떠난다.

 

그 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 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속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으로 부리를 벼리러 스비스조드로 날아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잠든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은 그렇게 어느 봄날 바람꽃처럼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 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은 1996년 발표됐다.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42회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99년 1월에는 KBS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어 방송했다. '일요베스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 프로그램도 다음 달 방송위원회가 주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을 받았다. 그 프로그램의 연출자는 윤석호, 바로 '겨울연가'로 일본열도를 뒤흔들어 놓은 그 사람이다. 겨울연가의 제작은 2002년, 말하자면 '겨울연가'를 위한 충분한 습작을 미리 이 작품에서 한 것이리라.

 

한 겨울 은비령을 찾아가는 '나'는 배용준이 맡았던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서일지도 모른다. 문학적 성취 이외에도 ‘은비령’은 소설이 지명을 바꾼 흔치 않는 일을 이뤄냈다. 이 작품 이전에 은비령이라는 고갯길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은비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필례약수터 앞에 '은비령'이란 카페가 있듯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멋진 고유명사가 되었다.

 

나중에는 작가 이순원 씨가 이곳을 찾았다.

 

"이제 은비령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람꽃」을 생각하고, 차를 마시고, 밤하늘을 보며 2,500만년의 시간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사실 「은비령」은 여기 한 번도 와보지 않고 지도만 보고 무대로 택했습니다. 신비하고 깊이 감춰진 곳이란 느낌과 무엇보다 고개에 이름이 없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설에 마을이 나오지만 그곳은 저 아래 옛 화전마을이 아니라, 바로 여기입니다. 3년 전 처음 와봤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상상과 실제가 이렇게 밀착될 수 있을까?"

 

그 필례약수에서 약수를 마시고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통해 몸을 식히곤 은비령 카페에 앉아있는 남녀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은 과연 2천 5백만 년이란 시간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과연 그들은 그 만남을 위해 2천 5백만 년이란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 그 시간은 윤회의 시간이기에 이미 우리들의 의지를 떠난 영원의 시간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셀 수 있는 수치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무한대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시간일 뿐이다. 다만 그 만남을 위해 가슴에 품고 가야 할 별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 날 밤 산장으로 돌아와 식구들이 잠든 시간,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나와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와 남편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여자가 2,500만 년의 시간과 인연을 실어 보낸 밝은 별이 있었다. 나는 그 옆의 별을 내 별로 하기로 했다. 별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는 시리우스(天狼星)와 한 쌍이 되어 늘 따라 도는 동반성(同伴星)이다.

 

나는 그날 밤 그 별을 따와서 은비령에 묻어두었다. 서울에는, 나의 집에는 다른 별이 있기 때문이다. 은비령에 묻어둔 별은 이 세상을 위한 별이 아니다. 그 별은 나 또한 별이 되어 어느 허공을 날아가고 있을 때에 등대가 되기 위한 별이다. 아직은 필요 없다. 내가 하늘로 올라갈 때에 묻힌 곳을 파헤쳐주면 그 별이 먼저 그 자리로 올라가 영원히 비추고 있으리라. 시리우스만큼 밝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리우스가 있는 한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그 별. 그 별을 나의 별로 만들었다.

 

“별에겐 별의 시간이 있듯이 인간에겐 또 인간의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 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일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2천 5백만 년이 될 때마다 다시 원상의 주기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천 5백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길에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 다시 만나게 되고, 겪었던 일을 다 다시 겪게 되고, 또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다시 겪게 되는 거죠.”

 

나의 여름휴가는, 비록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원을 비추는 별을 하나 만든 것으로 해서, 아마도 내 생애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