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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실학자 유형원이 쓴 개혁교과서 《반계수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7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개혁’은 한자로 ‘改革’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개(改)’는 고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가죽을 나타냅니다. 고대에 가죽은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의 계급과 신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죽옷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계급이나 신분이 바뀐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뜻이고 지금은 ‘개혁’이라 하면 낡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을 말하지요.

 

지금으로부터 352년 전인 1670년 조선 중기의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완성하고 1770년 경상감영에서 펴낸 《반계수록(磻溪隨錄)》은 그야말로 개혁교과서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이 일어나고 삼정(三政) 곧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 흉년ㆍ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ㆍ추수기에 되받는 진휼제도에 관한 일)의 문란까지 겹쳐 농민들의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선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유형원은 그 폐단을 바로잡고자 노력했으며, 22년에 걸쳐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합니다.

 

 

그는 사회개혁가이기도 했지만, 이익이 쓴 유형원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문예, 병법, 천문, 지리, 의약은 물론 산학(算學)에까지 능통한 학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재야사학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개혁교과서라 할 만한 이 책은 당대에 빛을 보지 못하고 100여 년 뒤인 영조 때에서야 나라에서 펴내게 됩니다. 그리고 정조임금은 반계의 이론을 수원 화성 건축으로 실천에 옮기게 되지요. 그의 시대로부터 35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