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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동포의 삶을 엿보는 사진집 《기억의 기록》

류은규, 도다 이쿠코 지음, 토향 출판, <간도사진관 시리즈 제2권>
타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개인 사진이 한 시대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97년부터 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에서 사진관을 경영했던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개인이 카메라를 소유한 시대가 와서 시골 사진관은 거의 폐업상태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낡은 유리건판에서 민초들의 순수한 삶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했다. 사진사 본인들은 인지 못 했겠지만, 그들은 시대를 새기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간도사진관 시리즈 제2권 《기억의 기록》(토향출판)을 쓴 사진가 류은규 씨의 말이다. 《기억의 기록》은 사진 류은규, 글 도다 이쿠코 씨 부부가 펴내고 있는 재중동포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값진 작품집이다.

 

 

류은규 사진가는 이어 말한다. “한국 사진사(寫眞史)라고 하면 해방 전까지의 항일운동이나 생활 모습, 광복 뒤의 우리나라 사진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북한과 중국 조선족 사진사(寫眞史)도 우리가 함께 품어야 할 범주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재중동포의 사진기록을 모으고 정리하는 일은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삼분의 일의 우리 사진사(寫眞史)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1993년 한중수교 이전,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정말 몰랐던 생소한 부분이다. 이번 책에서는 광복 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아직 한국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재중동포의 사진을 망라했다.”

 

류은규ㆍ도다 이쿠코 부부 작가는 지난해 9월, 시인 윤동주가 고향 북간도에서 쓴 스무 편의 시와 200여 장의 사진으로 구성한 간도사진관 시리즈 첫권인 《동주의 시절》을 펴내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 펴낸 《기억의 기록》은 간도사진관 시리즈 제2권째로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여기는 베이징 천안문' (배경 그림과 패널), 2부 '만세불변 색의 마법'(채색 사진), 3부 '미인송 구두 신은 처녀'(광고 사진), 4부 '그리움은 영원히'(광복 전 사진), 5부 '어찌 잊으리'(합성 사진), 6부 '여기 보쇼~'(사진관 이야기)로 나눠 각각 주제와 관련된 사진 170여 장과 해설을 곁들였다.

 

조선으로부터 이민이 몰려든 간도에 일찍부터 사진관이 들어선 까닭은 늘 이별과 가까이 있었던 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북간도의 중심지인 용정(龍井)에는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인과 조선인이 경영하는 사진관이 들어섰다. 기억을 기록하는 도구가 바로 사진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념사진은 추억에 지나지 앉지만 이를 정리하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며 나아가서는 사서(史書)의 가치까지 확대된다.

 

 

 

 

타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개인 사진이 한 시대의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가 영원히 남기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추억의 사진들이 사진관의 폐업으로 버려지게 된 상황에서 ‘사진 한 장의 소중한 역사성’을 인식한 부부의 손에 의해 수집되었다. 그렇게 모인 자료들이 간도사진관 시리즈 제2권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기적 같기만 하다. 류은규ㆍ도다 이쿠코 부부 작가의 《기억의 기록》을 통해 재중동포들의 고난 속에서도 지치치 않은 생명력으로 오늘의 역사를 일군 정겨운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싶다.

 

* 《기억의 기록》, 사진 류은규 · 글 도다 이쿠코 지음, 도서출판 토향(2023.5), 28,000원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이해했으면

[대담] 《기억의 기록》 펴낸 류은규ㆍ도다 이쿠코 부부 작가

 

 

- <간도사진관> 2권에서 특별히 말해주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간도사진관 시리즈를 통해 옛 사진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번 책에서는 사진 찍힌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사람 곧 사진사에게 초점을 맞추어 사진사의 마음과 사진 기술, 기법 등을 통해 옛 사진에 접근해 보았다.”

 

- 30년 동안 중국 동북 삼성을 다니며 재중동포의 삶을 촬영하고 많은 사진을 수집한 것으로 안다. 이러한 과정이 왜 중요한가?

 

“1993년 하얼빈에 살면서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버스 안에서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어린아이가 갑자기 “한국에서 왔어?”라고 반말로 말을 걸어왔다. 그때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러한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는 한국에 돈 벌러 가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조선족 아이들에게 민족의 이주와 정착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글보다 사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한국바람'이 불어 민족 언어교육이 한참 유행했다가 30년이 지난 지금,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도 조선말 교육이 쇠퇴해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지난 시절의 순수한 모습을 찍은 사진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했다.“

 

- 재중동포와 관련한 사진 5만 여장 가운데 제1권 《동주의 시절》과 이번에 출간한 제2권 《기억의 기록》 외에 앞으로 <간도사진관> 시리즈에 관한 계획은?

 

”《동주의 시절》은 윤동주가 고향에서 썼던 시를 통해 간도 이주민의 희로애락이나 격동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책이다. 《기억의 기록》은 재중동포에게 특별히 관심이 없더라도 사진 보는 재미로 넘겨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옛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가족사진을 꺼내 보거나 추억을 더듬어보는 가슴 따뜻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역사성이 짙은 진지한 구성의 책과 더불어 사진 보는 재미로 접근할 수 있는 구성의 책을 번갈아 가면서 기획하고자 한다.“

 

- 재중동포 사진을 접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는?

 

”한중수교 30년을 넘어 두 나라 사이 왕래가 빈번해지고 한국에 정착한 재중동포도 많이 늘었다. 재중동포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웃이다. 간도사진관 시리즈는 재중동포가 주인공이지만, 널리 우리 겨레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도 담겨있어 전혀 낯설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