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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왜적, 종묘에서 많이 죽어 나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1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5월 3일 치 기록에 보면 “경성이 함락되자 도검찰사 이양원 등이 도망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뒷부분에 보면 “이때 궁궐은 모두 불탔으므로 왜적 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宗廟)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었다. 그래서 평수가는 할 수 없이 남별궁(南別宮, 소공동에 있던 태종의 딸 경정공주가 살던 궁)으로 옮겼다.”란 기록이 보입니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으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주례(周禮)》와 《예기(禮記)》에 보면 ‘우사직 좌종묘(右社稷左宗廟)’라 하고, <제의(祭儀)>에는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하여, 임금이 도성을 건설할 때 궁궐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세워야 했습니다. 따라서 종묘는 사직과 함께 나라의 뿌리였습니다. 그래서 종묘에서 지내는 ‘종묘대제(宗廟大祭)’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포함된 의례로, 임금이 직접 거행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종요로운 제사였지요. 올해에도 5월 7일 낮 2시 ‘종묘대제(宗廟大祭)’가 열립니다.

 

물론 선조가 경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간 것은 큰 문제였지만, 조선의 신성한 종묘에 왜적 무리가 들어갔다가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여 많은 왜적이 죽자 종묘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선조실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옛 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보면 7세기 한반도 출신 승려들이 많이 건너가서 일본 사람들에게 농업과 건축 등 문명을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베푼 조선에 일본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할 줄 모릅니다. 사과란 피해를 본 사람이 됐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때 많은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서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혹사한 것에 대해 그들은 보상하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