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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너희들이 다시 왔구나!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사는 너희들 참 대견하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1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고 아침에도 2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더니 드디어는 숲의 나뭇등걸과 가지에 자리 잡은 너희들의 울음소리가 스테레오 합창처럼 들려온다. 몇 년 새 나무들이 커져서 거기에 있는 너희들이 모습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지만, 소리는 엄청나게 크고 잘 울린다.

 

 

"맴-맴-맴-맴-매애앰-"을 반복하며 울다가 마지막에 음이 높아지며 ''매애↗애애애...''를 길게 내는 것을 보니 너희들은 참매미일 것이구나. 마지막에 뒷다리를 들어 올리고 소리 내는 것도 그렇고. 그 옆에는 "르르르르르르르르르- 츠- 와아치- 르르르르스피이 - 피르빌빌빌빌빌 피오 스-피오츠츠츠스스…."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이 필시 애매미일 것이다. "쓰-름 쓰-름" 쓰름매미 소리도 들린다. 참매미 소리가 가장 대표적이긴 하지만, 너희들이 내는 소리는 일일이 옮겨적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숲의 앞과 뒤에서 한꺼번에 울어대니 이것이야말로 매미 교향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

 

우리 인간들이 너희를 반긴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너희들이 땅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5년 전후의 긴 시간을 보내다가 한여름 기온이 올라가면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어 마음대로 날개를 퍼덕이며 쏜살같이 날아다니다가 나뭇가지에 앉는 것인데. 그렇게 길게 기다리다 매미가 되어서는 보통 2~3주, 길어야 한 달이면 수명을 다하니 참으로 우리가 보기에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희들이 그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는 그 인고의 삶을 우리가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고, 기왕에 매미 성충이 되었으니 짧은 기간이라도 잘 지내고 너희 삶의 황금기를 실컷 즐기다 가라고 속으로 빌어주는 것을 너희들은 알 것이다. ​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은 너희를 매미라고 부르는데 어찌 미국, 혹은 영국 사람이 부르는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고, 또 배운 것 같지도 않은데, 그만큼 그 나라에는 매미가 많지 않은 때문인가 싶구나. 굳이 찾아보니 Cicada가 있고 발음은 '시케이더'라 하는 것 같은데 과연 미국에서는 주택가 근처에 잘 살지 않는다고 하니 ‘그래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매미를 한자로 蟬(선, 중국 발음은 찬)이라 한 것을 본 기억이 있고, 특별히 북경지방에서는 '知了'라고도 한다는데 중국 발음으로 하면 '찌랴오'가 되어 중국인들이 매미소리를 그렇게 듣고 기록한 것이라고 하네. 그런데 '知了' 라는 말은, 우리 말로는 '알았다'라는 뜻이 되니, 매미들이 와서 한여름이 된 것을 소리로 알려주는 것을 우리가 듣고 '알았다'는 뜻으로 풀어볼 수도 있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숲에서 정말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울어대는 너희들을 보면, 얇은 막 정도로만 만들어진 너희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가가 사실 궁금하기는 한데, 곤충학자들이 알아낸 것을 보면 매미 가운데 우는 것은 수컷이고, 암컷은 전혀 울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그러고 그러한 소리를 크게 내기 위해 수컷들이 자기 몸의 반 이상을 텅 비워놓는다는 것이 재미있구나. 구체적으로는 배 속의 V자처럼 배열된 힘줄과, 여기에 연결된 발성 기관이 매미 고유의 소리를 내는 것이 꼭 현악기가 소리를 내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하는구나.

 

왜 암컷이 아닌 수컷만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낼까? 글쎄, 연구자들은 대부분 생물이 그렇듯 매미도 짝을 찾기 위해서라는데, 그 작은 몸매에 비하면 워낙 소리가 커 자기 청각을 훼손할 수 있기에, 근육으로 고막을 접어서 청력 감도를 20데시벨(dB) 정도 줄여서 듣는다고 하니 말하자면 짝을 찾는 소리를 내기 위해 아주 교묘한 진화를 한 곤충인 셈이 된다고 하겠다.​

 

아 너희 매미들도 수컷은 울기만 하고 실제 2세를 낳는 일은 암컷이 맡는 것이고, 암컷들이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아야 해서 배 부분이 산란 기관으로 채워져 있기에 울지 못한다고 하니 각자 타고난 운명이 다른 것이구나. 우리가 어릴 때 매미를 잡아보면 수컷은 귀가 터질 정도로 비명을 질러대는데, 암컷은 소리를 내지 못하니 그저 발버둥만 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 게 그래서 그렇구나. ​

 

그런데 한 여름 멋진 울음소리를 내는 매미가 우리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3년 한가위 다음날에 매미란 멋진 이름을 단 태풍이 우리나라 남부, 영남지방에 상륙해 약 6시간 동안 머물다 빠져나갔는데 이때 엄청난 비와 바람과 파도로 재산피해가 4조 2천억 원에 이르고 사망과 실종 등 인명피해가 무려 132명이나 되었으니, 매미라는 이름의 태풍이 이렇게 호되고 무서운 이름이 된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이 매미란 이름은 북한이 제시한 것인데. 그 때문에 앞으로 태풍의 이름으로 매미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하니, 정말로 우리에게 매미란 이름은 끔찍한 기억의 주인공이었구나. 또 우리나라에 현재 서식하는 15종의 매미 말고 최근에는 ‘중국매미’라 불리는 주홍날개꽃매미가 등장해 수목에 해를 가하고 있다고 하니 이런 매미는 오히려 방제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매미가 우는 소리는 '여름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여름을 상징하는 소리가 되었다. 우리에게 매미는 어릴 때부터 부르고 들은 동요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이런 기억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대형할인점 같은 데서는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여름상품을 판매하려고 너희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해변의 파도 소리와 섞어서 들려주는 상술을 쓰기도 하니 이 여름엔 너희를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고 그런 만큼 너희가 곧 한여름인 셈이구나. ​

 

그런데 너희 매미는 또 한약재인 것을 아는가? 책선(蚱蟬)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한약재로 흔히 활용되었고 매미의 허물은 선태(蟬蛻), 선각(蟬殼), 선탈(蟬脫)이라고 하여 해열(解熱), 항과민(抗過敏), 파상풍 등에 효능이 있다는 것 아닌가? 최근에는 너희 매미들이 유충으로 있을 때의 형태인 굼벵이가 신장염이나 간경화증의 한방치료제로 쓰이고 있다고 하니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에게는 한여름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너희들을 잡아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고,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매미를 진귀한 음식아라고 말했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좀 거북한 이야기구나. 그러나저러나 우리나라도 메뚜기를 잡아서 요리해 먹는 것을 생각하면, 매미라고 요리로 해 먹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기는 하구나. 중국인들은 진귀한 식재료로 매미의 배(蟬腹)를 꼽는다고 한다. 매미가 쉬지 않고 계속 울고, 그 과정에서 계속 배를 움직이는 것에서 배에 생명력이 넘쳐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누군가는 곤충의 생태를 깊이 연구한 파브르의 책에서 굼벵이를 잡아 볶아 먹는 장면을 보았다는 말도 있고 그 맛이 새우 맛과 비슷하며 볶는 것보다는 튀기는 것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2021년 6월 미국에서는 미국 땅이 수십억의 매미로 뒤덮이는 소동이 일어나자 매미를 재료로 한 타코, 피자, 쿠키 등을 만들어 먹자는 운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이고, 우리로서는 더 이상 예쁜 너희들을 식재료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구나. ​

 

며칠 전 아침에 우리 아파트 방충망에도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날아와 있더구나. 해가 뜨고 숲에 산책을 나가면 정말로 앞뒤로 들리는 너희들의 합창이 한여름의 교향악으로 들리는데, 예전에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을 지날 때는 길가의 가로수에서 들리는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의 소음으로 들려 짜증이 난 적이 있기는 하지.

 

원래 너희들은 빛이 없는 상황에서 잘 울지 않는 습성이 있기에 밤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요즘에는 해가 진 이후에도 열대야가 지속되고 한밤중에도 가로등이나 집안과 상점의 불빛으로 밤이 낮처럼 환한 곳이 많아 도시에서는 밤중에도 매미가 울어대는 바람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특히 올해같이 사상 최악의 무더위가 온 때에는 너희들의 울음소리가 듣기 괴로울 수는 있겠는데 거기에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구나.

 

 

 

 

그렇게 시끄러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얼마나 더 가겠는가? 이미 입추도 지났으니 곧 너희들은 긴 기간의 기다림 끝에 얻은 생명의 잔치를 끝내고 다시 알을 낳아 2세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 알들은 다시 긴 시간을 견디고 태어나는 순환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들 모든 피조물의 운명이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들이 보기에는 너희가 누리는 한 달 안 되는 매미로서의 삶이 짧아 보이겠지만 너희들로서는 가장 보람 있는,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으니 우리가 그 짧고 긴 것만을 따질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모든 삶은 주어진 그 기간이 항상 최고의 시간이니만큼, 우리가 괴롭히지 않을 테니 너희들은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다가 삶을 끝내려무나. 우리 인간들은 이 여름 무더위 때문인지, 사회적인 문제 때문인지 가끔 미친 사람들이 남을 해치고 싶어 하는 충동을 받아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그런 것을 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사는 너희들이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곧 다시 못 볼 너희들이여, 이 여름 실컷 울고 알을 배고 세끼를 만들어 이 세상을 길이길이 이어가려무나. 너희들이 그 긴 시간을 이기고 진정한 완성체로서의 매미가 되어 이 세상에 왔다고 큰 소리로 잔치를 벌이는 것을 우리도 즐겁게 생각하고 우리의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