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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마음이 따뜻한 정치인 노회찬

《노회찬 평전》, 이광호, 사회평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3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 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중간 줄임)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은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오십 대, 육십 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노회찬의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연설의 일부분입니다. 이 연설은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뒤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노회찬 6411 정신’이라고까지 말하지요. 이렇듯 노회찬은 약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마음이 따뜻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국회에 들어가서도 제일 먼저 국회 청소하는 분들과 식사하며 이들을 챙겼습니다.

 

그렇기에 노회찬 장례 행렬이 국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저세상으로 떠나는 노회찬을 맞이했지요. 그리고 이런 따뜻한 노회찬이었기에 모란공원으로 향하는 장례 행렬이 남양주시로 들어섰을 때는 남양주시 개인택시연합회 택시들이 대열을 갖추어 회찬이를 맞이했지요.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일제히 상향등을 켜고 애도하면서요.

 

《노회찬 평전》에서는 이러한 따뜻한 노회찬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2017. 10. 24. 대구고등법원 국정감사 때 노회찬은 천종호 판사를 불러냅니다. 천 판사는 자신에게 무얼 따지려고 불러냈나 깜짝 놀랐겠지요. 그러나 회찬이는 8년 동안 소년 사건만 전담하며 비행소년의 사회 복귀를 위해 열성을 다하는 천 판사를 격려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회찬이는 질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7초간 침묵 후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다른 자리에서 사법부 신뢰가 떨어진 데 대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요..... 고맙습니다.

 

 

노회찬은 사법부의 재판으로 징역 2년 6월을 살았고, 삼성 X파일 선고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사법부에 날카로운 비판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약자를 위해 애쓰는 판사를 만나서는 눈시울이 붉어진 것입니다. 《노회찬 평전》에 실린 노회찬의 따뜻한 모습을 인용해봅니다.

 

2000년 10월 평양에서의 일입니다. 지하철 령광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외출한 강정옥 양은 흰 블라우스에 붉은 머플러 차림의 예쁜 소녀였습니다. 남쪽의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였어요. 인사를 나누고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고등중학교 2학년이라는 거예요. 놀라서 나이를 물으니 12살이랍니다. 그 소녀를 다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켜보던 북측 안내원이 겸연쩍은 듯 “그놈 참 키가 작네”라고 하더군요. 목이 메었습니다.

 

인천 송림동. 용접공 시절 월세 5만 원 사글셋방 살던 동네입니다. 재래시장, 20년 전과 그대로입니다. 흰 고무신 한 켤레 사는데 끝까지 돈을 안 받으시네요. 고무신 한 켤레 얻었는데 가슴이 미어집니다.

 

지난여름 뜨거웠던 서울광장 앞에서 우리는 고인들을 생각하며 삼보일배를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대통령의 단 한마디 말을 기대하며 청와대로 향했던 유가족과 시민들의 삼보일배는 또다시 경찰의 방패에 가로막혔습니다. 삼보일배가 가로막힌 그 자리에 하늘에서 억수 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유족도 울고, 시민도 울고, 하늘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정치인 노회찬, 그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