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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한여름 밤의 꿈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은 자유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1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 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작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속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으로 부리를 벼리러 스비스조드로 날아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잠든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은 그렇게 어느 봄날 바람꽃처럼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 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 이순원, 《은비령》 ​

 

1996년 발표되어 절찬을 받은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은 맨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2천 5백만 년 뒤에 다시 돌아온다는 혜성에 실어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우주라는 영원의 시간에 봉인해놓았다. 18년 전 소설의 무대가 된 은비령을 처음 밟고서 그 느낌을 압축한 글을 쓰면서 나는 그들의 별 대신에 내 마음의 별을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란 별의 옆에 있는 작은 동반성에 올려 역시 우주에 봉인해 놓았다.

 

 

그날 밤 산장으로 돌아와 식구들이 잠든 시간,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나와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와 남편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여자가 2,500만 년의 시간과 인연을 실어 보낸 밝은 별이 있었다. 나는 그 옆의 별을 내 별로 하기로 했다. 별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는 시리우스(天狼星)와 한 쌍이 되어 늘 따라 도는 동반성(同伴星)이다. 나는 그날 밤 그 별을 따와서 은비령에 묻어두었다. 서울에는, 나의 집에는 다른 별이 있기 때문이다. 은비령에 묻어둔 별은 이 세상을 위한 별이 아니다. 그 별은 나 또한 별이 되어 어느 허공을 날아가고 있을 때 등대가 되기 위한 별이다..... 이동식, <은비령에 별을 묻고> ​

 

당시 이런 글을 쓰면서 우연히도 시리우스에게 동반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으로 은비령에 관한 나의 글(이것도 소설의 범주에 들 것이다)의 끝을 마감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18년 만에 은비령을 다시 찾아 그 추억을 회상하던 중에 이 시리우스별과 그 동반성이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신화에 나온다는 사실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서아프리카 말리의 고원 지역에는 도곤족(Dogon people)이라는 소수 민족이 사는데, 이들은 우리가 놀랄 정도로 천문학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시리우스가 두 개의 별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반은 물고기 모양이고 반은 사람 모양인 괴상하게 생긴 지성체가 시리우스별로부터 와서 인간에게 문명을 전해주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리우스라는 별은 밤하늘에 가장 밝은 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밝은 별의 이름을 모르고 있는데 태양과 달을 빼고 가장 밝은 별은 시리우스다. 밤하늘에서 2번째 밝은 별보다 2배나 밝다고 한다. 시리우스는 지구에서 불과 8.6광년 떨어져 있으니 그처럼 밝게 보인다. 우리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서양을 아울러 여러 문화권에서 관심을 받아왔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시리우스는 사냥꾼 오리온이 데리고 다니던 개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시리우스는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별이었다. 이글거리며 불탄다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세이리오스’가 바로 시리우스의 어원이고 뜨거운 여름날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 ‘dog days’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시리우스를 ‘늑대별’ 혹은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불렀다. 시리도록 푸른빛이 늑대의 눈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앞에서 내가 시리우스의 동반성 이야기를 했지만, 시리우스에는 실제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짝별이 있다. 160여 년 전인 1862년 1월 망원경 제작자인 클라크 부자가 찬란한 시리우스별 옆에 희미한 별을 발견한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밝은 별 시리우스를 ‘시리우스A’, 어두운 그 짝별을 ‘시리우스B’라고 불렀다. 시리우스의 짝별 B는 수수께끼의 천체였다. 너무나도 어두운 별이지만 큰 별인 시리우스A와 50년 주기로 서로 공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그런데 프랑스의 이름 있는 학자가 아프리카 말리족들이 시리우스가 두 개의 별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반은 물고기 모양이고 반은 사람 모양인 괴상하게 생긴 지성체가 시리우스별로부터 와서 인간에게 문명을 전해주었다고 믿고 있다고 1950년에 정식 논문으로 발표해 난리가 났다.

 

 

 

논문을 발표한 프랑스 학자는 도곤족과 생활을 한 뒤 도곤족들은 이미 8천 년 전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포톨로라고 부르는 시리우스 B가 신이 만든 최초의 별이며 이곳에서 모든 물질과 영혼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리우스에서 온 놈모라는 생명체가 식물을 가져오고 동물을 만들고 사람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또한 시리우스A와 시리우스B가 서로의 중심점을 중심으로 50년 동안 공전을 하는데 도곤족들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 50년에 1번씩 이상한 가면을 쓰고 축제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전승되는 노래 가서 또한 흡사 이들의 우주여행을 묘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이것이 진실일까? 물론 그럴 수가 없지만 이러한 전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듣고 내가 조금 흥분을 했다. 아니 내가 나의 별로 점찍어 놓은 시리우스의 동반성이 그러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준 별이란 말인가? 와! 이 전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밤하늘에서 18년 전에 우연히 점을 찍은 그 별에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구나. 정말로 그날 밤 은비령에서 밤하늘이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준 것은 아닐까? 그러니 18년 뒤에도 은비령을 다시 가고 거기서 별을 보고 별별 생각을 다 해 보는구나.

 

​그렇지만 아무리 프랑스 학자가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해도 그 전설이 어느 정도라도 진실일 가능성은 없다고 하겠다. 실제로 이 논문 발표 이후 수많은 천문학자가 이 별에 대해, 그리고 도곤족의 전설에 대해 현지에도 가서 조사하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결론은 그 프랑스 학자들이 도곤족들에게 이러한 전설을 가르쳐준 것 같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그런데 이 도곤족 전설을 듣고 금방 흥분한 것은, 그 전에 스위스의 저술가 폰 대니켄 등이 우주인들이 문명을 가져다주었다는 주장을 한 것들을 조금 열심히 읽어서 어느 정도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기에 금방 끌려 들어간 것이리라.​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나의 엷은 귀와 어리석음을 자책하였지만, 한여름 밤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어릴 때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할머니에게서 별의 전설을 듣고 큰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착오야 오히려 아직도 동심을 잃지 않은 증거로 좋게 봐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곤족 전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별에서 온 생명체들이 문명을 전했다는 신화들은 전승되고 있다. 마야 잉카인들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마고신화에서 마고성으로부터 인류가 왔으며 마고할머니가 큰 개를 데려왔다고 한다. 시리우스는 큰개자리에 있는 별이다. 그런 상상의 영역을 떠나서 실제 우주탐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2호는 29만 6천 년 뒤 시리우스에서 4.3광년 떨어진 곳을 지나갈 것이라고 한다. 29만 6천 년 뒤라고 하니 우리 인간이 이 시리우스 근처에 가보는 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도 꿈도 꿀 수 없는 시간이다.

 

어쩌면 은비령의 소설 속에 나오듯이 2천5백만 년 뒤에 다시 돌아온다는 그 혜성이나 이 시리우스별이나 우리 인류에게는 접근 불가의 영역이고, 그러기에 이런저런 상상을 통해 끝없는 공간과 시간의 영역인 이 우주에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굳이 찾아보는 것이다. 정말로 이 거대한 우주에서 먼지 하나도 안되는 우리 인생, 그 속에서 한밤중에 끝없는 우주 속의 셀 수 없는 별을 올려보며 여러 가지 꿈을 꾼다. 그것은 정말 ‘한여름 밤의 꿈’이라 하겠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