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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도 나의 이웃이다

허홍구, <이웃 사람>
[겨레문화와 시마을 1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웃 사람

 

                                     - 허홍구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가끔 낯선 분의 인사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웃음꽃 피우며 지나가신다.

 

   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누구지 하고 궁금했었다

 

   나는 모르겠는데

   저분은 나를 어떻게 알까?

   다음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해야지

 

   그래, 우리 서로 모른다 한들

   어찌 이웃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낯설어도 같은 동네 가까운 이웃이다.

 

 

 

 

예전 농가에서는 한로, 상강 무렵 가을걷이로 한창 바빴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를 보면 이때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이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 허기진 농부들에게 기다려지는 게 새참 때였고 이때 빠질 수 없었던 것은 막걸리였다. 막걸리는 이른바 '앉은뱅이 술' 가운데 하나다. 곧 너무 부드럽고 순해서 목으로 넘기기 좋다 보니 생각 없이 잔뜩 마시게 돼 정작 일어나려고 하면 취기가 뒤늦게 확 올라와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게 된다는 술을 뜻한다. 그런데 이 막걸리는 가을걷이하는 농부들만 마시는 게 아니다. 지나가는 길손과 함께 나누어 마시는 게 막걸리요 새참이었다. 그만큼 우리 겨레에게는 이웃은 물론 지나가는 길손과도 환하게 웃을 줄 알았다.

 

여기 허홍구 시인은 낯선 분이 반갑게 하는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누구지 하고 궁금했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곤 곧바로 “다음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해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래, 우리 서로 모른다 한들 어찌 이웃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라고 하면서 말이다. 허홍구 시인은 배달겨레의 심성을 지녔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