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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멋쩍게 안주를 집어준다

정낙추, <부부>
[겨레문화와 시마을 16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부 부

 

                                       - 정낙추

 

   온종일 별말 없이

   풀 뽑는 손만 바쁘다

 

   싸운 사람들 같아도

   쉴 참엔 나란히 밭둑에 앉아

   막걸릿잔을 건네는 수줍은 아내에게

   남편은 멋쩍게 안주를 집어준다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고도

   자식 낳고 곡식을 키웠다

   사랑하지 않고 어찌 농사를 지으며

   사랑받지 않고 크는 생명 어디 있으랴

 

   한세월을 살고도

   부끄러움 묻어나는 얼굴들

   노을보다 붉다

 

 

 

 

 

우리 겨레가 아내와 남편 사이에 쓰는 부름말은 ‘임자’였다. 요즘에는 ‘주인’이라는 한자말에 밀려서 자리를 많이 빼앗겼지만 말이다. 알다시피 ‘임자’는 본디 ‘물건이나 짐승 따위를 제 것으로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여느 이름씨 낱말이다. 아내는 남편을 “임자!” 이렇게 부르고, 남편도 아내를 “임자!” 이렇게 불렀다. 서로가 상대를 자기의 ‘임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로가 상대에게 매인 사람으로 여기고 상대를 자기의 주인이라고 불렀던 것이고, 아내와 남편 사이에 조금도 높낮이를 서로 달리하는 부름말을 쓰지는 않았다.

 

토박이말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김수업 선생은 “아내와 남편 사이에 높낮이가 없다는 사실은 가리킴말(지칭어)로도 알 수 있다. 우리 겨레가 아내와 남편 사이에 쓰는 가리킴말은 ‘이녁’, 곧 ‘이녘’이었다. 서로가 상대 쪽을 가리키며 자기 스스로라고 하는 셈이다. 아내와 남편 사이는 둘로 떨어지는 남남이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곧 한 사람이니 ‘그녘’으로 부를 수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라고 했다. 이를 보면 우리 겨레는 아내와 남편은 평등할 뿐만 아니라 아예 한 사람이기에, 상대가 곧 나 스스로라고 여겼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여기 정낙추 시인은 시 <부부>에서 “온종일 별말 없이 풀 뽑는 손만 바쁘다”라고 부부를 얘기한다. 그러나 “싸운 사람들 같아도 / 쉴 참엔 나란히 밭둑에 앉아 / 막걸릿잔을 건네는 수줍은 아내에게 / 남편은 멋쩍게 안주를 집어준다”라고 노래한다. 우리 겨레의 부부는 ‘사랑한다’라고 말할 줄 모르지만, 부부는 서로에게 임자였고, 서로를 ‘이녘’으로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한세월 살고도 부끄러움 묻어나는 얼굴이 노을보다 붉단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