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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정조의 백성사랑이 꾸불텅하게 만든 화성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7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완성되었다. 임금이 화성 유수(華城留守) 조심태(趙心泰)에게 이르기를, "성을 쌓는 데에 든 비용이 거의 80만에 가까운데, 소중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차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본래 생각이었다. 이 책을 펴내 모든 사람이 성의 공사에 관한 본말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는 《정조실록》 45권, 정조 20년(1796년) 11월 9일 기록으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완성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화성성역의궤》는 조선시대 화성유수부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 ‘화성(華城)’을 쌓은 경위와 제도ㆍ의식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조 18년(1794) 1월부터 정조 20년(1796) 8월에 걸쳐 쌓은 화성성곽은 큰 토목건축 공사로서 많은 경비와 기술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공사 내용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뜻에서 정조가 김종수(金鍾秀)에게 명을 내려, 1796년 9월에 시작하여 그해 11월 9일에 원고가 완성되었고 1801년(순조 1) 9월에 인쇄하였지요.

 

화성성곽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무덤을 1789년(정조 13) 10월 화산(花山: 지금의 융건릉)으로 이장한 뒤 3년에 걸쳐 쌓은 곳으로, 전체 길이 5.4km가량의 조선시대 축성기술이 총집결된 대표적인 건축입니다. 특히 이 성곽은 구부정하게 쌓았는데 그 까닭은 정조가 영의정 채제공에게 화성을 쌓을 때 그곳에 살던 백성을 쫓아내지 말라고 명을 했던 데에 있습니다. 기존의 집을 피해서 성곽을 쌓자니 자연 꾸불텅하게 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화성은 그야말로 정조의 백성사랑이 만들어 낸 결정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