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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종묘, 임금의 혼이 깃든 신전

《종묘에서 만난 조선 왕 이야기》, 김향금 글, 미래엔아이세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생과 사를 가르는 긴 가로선.

언젠가 사진에서 본 눈 내린 종묘의 풍경, 어둠이 짙게 깔린 종묘와 하얀 눈 색의 대비는 생과 사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지은이의 표현에 따르면 종묘는 ‘유교식 신전’이다. 죽은 임금의 육신은 백이 되어 왕릉에 묻히고, 정신은 혼이 되어 종묘에 깃든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신전, 그것이 바로 종묘다.

 

흔히 종묘를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정도로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라면, 김향금이 쓴 이 책 《종묘에서 만난 조선 왕 이야기》가 종묘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종묘’라는 엄숙한 공간을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무척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종묘는 태조 4년(1395), 태조의 지대한 관심 속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종묘 건물에 쓰일 재목을 한강에 나가 살필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경복궁에서 북악산을 등지고 있는 임금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이 세워졌다.

 

종묘와 사직을 짓고 나서 궁궐과 성곽을 차례대로 지었다. 이렇듯 종묘는 임금이 사는 궁궐보다 더 먼저 지어진 곳이자, 임진왜란으로 모든 것이 불타고 나서도 궁궐을 다시 짓는 것보다 종묘를 다시 짓는 일부터 논의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신주는 뽕나무나 밤나무로 만든 작은 나무토막이었다. 신주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 죽은 이의 혼령이 쉽게 의지할 수 있도록 했다. 옛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백(넋)은 흙으로, 혼(얼)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기에 죽은 임금의 혼을 모신 종묘와 백을 모신 왕릉을 따로 만들었다.

 

(p.40-41)

종묘를 운영하는 원리는 간단했어. 나라를 세운 태조 임금과 더불어 현재 왕의 4대 조상까지를 종묘에 모시는 거였어. 조선을 세운 태조 임금의 자리는 만대가 지나도 절대 옮길 수 없는 자리야. 그래서 종묘를 태조의 묘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태묘’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아무튼 한 임금이 죽으면 5대가 지난 윗대 조상부터 순서대로 종묘에서 신주를 내보내 종묘 마당에 묻으면 되었어.

 

그러나 5대가 지난 조상의 신주도 차마 마당에 묻을 수 없는 마음에, 영녕전이 생기게 되었다. 5대가 지난 임금의 신주를 땅에 파묻는 대신 옮길 곳을 마련하기 위해 종묘의 서쪽에 별묘를 세우고, ‘조상과 자손이 함께 편안하다’라는 뜻을 담아 ‘영녕전’이라 했다.

 

이때부터 종묘에서 제사 지내는 5대가 다 차면 신주를 영녕전으로 옮기고, 새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전통이 생겨났다. 나중에는 대대로 모셔도 5대의 대수에 포함되지 않는 신실인 ‘세실’이 만들어져 임금을 세실에 모시느냐 마느냐를 두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세실에 모셔진 임금이 과연 그만큼 업적을 이룬 훌륭한 임금이었는가를 살펴보는 데 할애되어 있다.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산 사람의 의식 또한 지배당하는 법이니, ‘종묘’는 임금의 혼을 모신 공간이었지만 현실 세계에 미친 영향력도 막강했다.

 

서울 한복판, 엄숙하면서도 정갈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종묘는 조선 역사의 중심축을 차지한 핵심 공간이었다. 유교식 신전, 그 조용한 아름다움, 가로로 끝없이 긴 공간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도 모종의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종묘를 접한 이라면 누구나, 종묘를 대하는 감회가 남달라질 것이다. 어린이용 도서로 나왔지만 어른 또한 종묘를 알기 위해 펼쳐 들만한 책이다. 정말 멋진 ‘종묘’라는 공간, 그 장엄한 세계 속으로 떠나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