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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명창의 유언, “신의(信義) 있게 살거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5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34살이 된 제자, 어연경이 단국대학교 국악과에 편입학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성창순 명창이 본인보다도 더 기뻐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가 얼마나 제자들의 교육문제에도 관심이 깊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한다는 이야기, 성창순은 <국립국악고등학교> 개교 초기에도 판소리 강사로 출강하였는데, 학생들이나 교사들 대부분이 그를 환영하였으며, 글쓴이가 1983년, 단국대 국악과의 창설 학과장으로 부임할 당시에도 그를 강사로 초빙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어연경은 생애 첫 판소리 완창발표회로 성창순 명창에게 배운 <심청가>를 2015년 12월,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가진 바 있다. 스승에게 배운 소리를 다듬고 암기하여 스승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나간 경험은 선생이 세상을 뜬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그립고 가슴 벅찼던 시간이었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는 이 무렵부터 성창순 명창의 구음(口音)을 꾸준히 갈고 닦아 왔다고 하는데,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악기 반주자들과 함께 무용 반주음악도 담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승에게 배운 소리요, 구음이어서 구음에 관한 평가도 수준 이상이다. 훗날 이러한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어연경은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명창부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2016년, 성창순 명창이 폐암 선고를 받았다는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고 했다. 자녀가 없었기에 선생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은 여러 제자가 시간이 되는대로, 또는 기회가 닿는 대로 앞장서서 해 왔지만,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었던 어연경에게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가족을 돌보는 일도 어려운데, 스승을 모시고 병원 출입한다는 것이 어찌 쉽고 만만한 일이었는가! 그러나 그는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있었다고. 담담하게 밝힌다. 간혹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쓸데없는 오해나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해서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별문제가 아니었다고 일축한다. 어연경이 전하는 말이다.

 

“2016년 말이었어요. 선생님이 감기 증세를 보여 급히 00내과를 모시고 가니까, 폐에 물이 찼다며, 폐결핵 아니면 폐암이라는 소견을 내는 거예요. 더 지체할 수 없었기에 급히 세브란스 응급실로 모시고 갔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병원에서는 우선 응급적인 조치로 폐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하는 조치를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생님은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폐에 구멍을 내고 호스를 연결했는데, 그 상황에서 소리를 한다?

 

글쓴이는 이 말을 전해 들으면서 과연 판소리를 얼마나 사랑했고, 제자들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성창순 명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세상을 뜨기 전에 치렀던 마지막 공연들은 대부분이 다 물주머니를 차고 한 소리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해가 바뀌고, 2017년 1월 5일, 성창순 선생님은 세상을 뜨셨습니다”라고 고개를 떨구며 전달하는 어연경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밀려온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가 선생을 그리며 전하는 말이다.

 

“선생님과는 추억이 정말 많았어요. 아침이면 ‘지원이 학교 갔냐?’를 시작으로 선생님께서 일찍 전화를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아침에 전화가 울리지 않는 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처음 1997년에 선생님을 만났고, 2017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생님 옆을 지켜오던 20년 세월이 꿈같이 지났어요. 선생님과 함께 지낸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가지만. 선생님이 호스를 끼신 채, 숨 가쁘게 하시던 마지막 말씀, ‘신의(信義)있게 살거라’는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스승과 작별한 이후,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연경도 소리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2017년 영국 애든버러 페스티벌에 참여해 노인이 사후에 4종의 강을 건너는 이야기를 구음으로 구성하여 별 5개를 받았던 활동이라든가, 멕시코ㆍ터키ㆍ프랑스, 미국 워싱턴ㆍ중국 상해 등 각 나라의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공연하러 다녔던 일들, 특히 2019년 4월, 상하이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공연이라든가, 2023년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페스티벌에 판소리 초청 공연 등, 스승에게 배운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활동을 해 온 것이다.

 

 

현재 그는 단국대 국악과와 이화여대에 출강하여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는 한편,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성창순 명창의 소리세계, 구체적으로는 선생의 소리에 나타나 있는 다양하고 특징적인 창법을 연구하고자 자료 수집 중이라고 했다. 항상 진지하게 소리에 접근하고 있는 어연경은 그의 스승, 고 성창순 명창에게 오늘도 이렇게 기도한다.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는 뚝심 있고, 신의 있는 제자, 어연경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