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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난 어미, 산 자식이, 생사 간에 무삼 죄냐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5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 이야기는 성창순 명창이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신의(信義)있게 살거라”라는 말이었다는 이야기, 2016년 말,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응급적인 조치로 폐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하는 조치를 했는데, 그 상황에서 소리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성창순 명창이야말로 진정으로 판소리를 사랑했고, 제자들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전해준 어연경은 현재 단국대 국악과와 이화여대에서 후진들을 지도해 오고 있는 한편,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데, 논문의 방향은 성창순 명창의 소리세계, 다시 말해 선생의 소리에 나타나 있는 특징적인 창법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들을 만한 대목, 곧 눈 대목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거니와 현재 전해오는 소리 가운데 판소리 <심청가>는 순조 때의 김제철이나, 철종 때의 박유전이 잘 불렀다고 하는데, 그 박유전의 소리는 이날치와 정재근 등을 거쳐 오늘에 이어오고 있다.

 

그 한 축은 이날치를 통해 김채만-박동실-한애순에게 전승이 된 계보와 또 다른 축은 정재근의 소리로 그는 보성의 정응민을 통하여 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에게 이어지며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외 주상환, 전해종, 고종 때의 정창업이나 최승학, 김창록, 황호통, 김채만, 송만갑, 이동백, 등도 <심청가>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심청가>는 판소리로 부르든, 연극이나 영화, 또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형태로 감상하든, 그 이야기 줄거리는 동일하다. 특히 판소리로 감상하는 <심청가>는 슬픈 대목이 많아서 계면조(界面調)로 이어지는 가락이 많은 편인데, 그런가 하면 상대적으로 아니리가 적은 편이어서 소리에 능하지 않고서는 심청가를 이끌어 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심청가>는 이야기의 줄거리 또는 가락의 짜임을 참고하여 구분해 본다면 하나는 심청이가 태어나는 대목~심청모의 출상대목이다. 이 부분에서는 곽씨 부인의 어진 행실이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하는 대목이나 4월 초파일의 현몽, 심청 탄생과 같은 대목으로 되어있다.

 

소리 그 자체도 슬픈 소리가 아닌 우조(羽調)나 평조(平調)가 중심이어서 유연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가서 심청 어머니의 유언대목이나 심봉사 통곡대목, 어머니의 출상과 같은 슬픈 대목들이 이어져 계면조(界面調)로 이어간다. 둘은 심봉사가 젖동냥 다니는 대목~몽은사 화주승에게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대목까지, 셋은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후원에서 기도하는 대목~인당수 깊은 물에 빠지는 대목까지. 넷은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를 용궁으로 안내하는 대목~황후가 되었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해 탄식하는 대목까지, 그리고 마지막은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황성으로 가는 대목~눈을 뜨게 되는 대목까지 5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성창순의 창본을 통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곽씨 부인의 유언대목이 시작된다.

 

 

<진양조> 가군의 손길 잡고, 유언하고 죽더니라.

“아이고 여보 가군님, 내 평생 먹은 마음, 앞 못 보는 가장님을, 해로백년 봉양타가, 불행망세 당하오면, 초종장사 마친 후에, 뒤를 쫓아 죽자더니, 천명이 이뿐인지, 인연이 끊쳤는지, 하릴없이 죽게 되니, 눈을 어이 감고 가며, 앞 어둔 우리 가장, 헌옷, 뉘라 지어주며, 조석공대 뉘랴 하리. 사고무친 혈혈단신, 의탁할 곳 전혀 없어, 지팡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다니시다, 구렁에도 떨어지고, 돌에 채어 넘어져서, 신세 자탄 우는 모양, 내 눈으로 본 듯하고. 기한(飢寒)을 못 이기어, 가가문전(家家門前) 다니시며, ‘밥 좀 주오’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난 듯, <중략>

저 자식이 죽지 않고, 제 발로 걷거들랑, 앞을 세워 길을 물어, 내 묘 앞에 찾아 와겨, 모녀 상면을 하여 주오. 할 말은 무궁하나, 숨이 가뻐 못 하것소.”

 

<중머리> “아차 아차 내 잊었소. 저 아이 이름일랑, 청이라고 불러주오.” <중략> 한숨 쉬고 돌아누워, 어린아이를 끌어다 낯을 한데 문지르며, “아이고 내 자식아, 천지도 무심하고, 귀신도 야속하구나.

 

“네가 진즉 생기거나, 내가 조금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이 없는 궁천지통을 널로 하여 품게 되니, 죽난 어미, 산 자식이, 생사 간에 무삼 죄냐, 내 젖 망종 많이 먹어라.”

 

손길을 스르르 놓고, 한숨지어 부난 바람, 삽삽 비풍 되어 불고, 눈물 맺어 오난 비난 소소 세우(細雨) 되었어라.

폭깍질 두세 번, 숨이 덜컥 지는구나.(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