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승 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니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추는 줌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춤꾼은 치마저고리나 바지저고리 등을 갖추어 그 위에 장삼을 걸쳐 입고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염불장단에 맞추어 합장하면서 춤이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굿거리장단에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춤을 마무리한다. 오랜 세월 예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춤으로 한국춤의 본질인 정중동(靜中動)이 살아있다는 평가다. 곧 멈춘 듯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는 듯 멈추는 춤이며,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성이 숨어 있는 고도의 춤사위를 보여준다.
최승희의 승무를 보고 시를 지었다는 조지훈의 대표시 ‘승무’를 읽으면 손끝 하나 발끝 하나 눈짓하나에 온 마음을 다해 춤을 추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박사 고깔에 감춘 젊은 비구니가 추는 승무는 그 속에 무슨 사연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조지훈은 이어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라고 노래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손을 뻗지만, 저 깊은 마음속에는 거룩한 합장이 숨어있음이랴. 물론 춤꾼은 하늘하늘 날리는 나비처럼 춤을 추지만 그 속에서 묵직하고 흔들림 없는 정결함이 묻어 나온다. 그에 더하여 번뇌는 별빛이 되어 세속적 고통과 슬픔을 모두 지워내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도달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