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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반야(半夜) 진관(秦關)의 맹상군 이야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5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말 못 하는 까마귀도, 반포지은(反哺之恩)을 한다는 이야기, 심청이가 장 승상 댁에 가 있는 동안, 심봉사는 오지 않는 딸을 찾아 나섰다가 개천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다행히 몽은사 화주승이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심청가 이야기는 바로 이 대목, 곧 심봉사가 화주승에 의해 목숨을 구한 뒤, 스님이 제시하는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에 시주하고, 진심으로 불공을 드리면 눈을 떠서 대명천지를 보게 된다는 정보’를 듣게 되면서 크게 변화한다. 누구나 자기의 목숨을 구해 주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는 구원자가 나타나면 그의 말만 반겨 듣고, 앞뒤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때가 많은 법이다.

 

처음에는 심봉사도 눈을 뜨게 된다는 제안에 호기 있게 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앞뒤 사정이 이런데도 어린 심청은 어떻게든 공양미 300석을 마련해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효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심청이가 ‘어떻게 하면 공양미 300석을 불전에 시주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해 있을 때, 때마침, 남경장사 선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것이었다. 인제수에 쓸 15~6살의 처녀를 사겠다는 소리가 그의 귓전에 울리는 것이었다.

 

 

심청이 앞뒤 좌우를 가릴 여유가 없었다. 즉시 뛰어나가 스스로 인당수의 제수가 되기를 결심한 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공양미 300석을 확보한 다음, 아예 행선 날까지 확정해 놓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심봉사는 부처님과의 약조에 예민해진 상태에서 딸에게 묻고, 또한 대답을 듣는다.

 

“아가, 300백 석을 어떻게 마련하여 불전에 바쳤느냐?”

“네, 일전 장 승상 댁 부인이 저에게 수양녀 제의가 있을 때, 우리의 사정을 소상하게 여쭙고 수양녀의 대가로 300석을 받아 절에 바치었어요”

 

그럴듯하게 둘러대면서 아버지의 걱정을 깔끔하게 비켜 가는 것이다. 그러나 행선 날이 다가오면서 부친과 헤어져 죽을 일, 특히 사람으로 태어나 15살에 스스로 죽는다는 현실 앞에 심청의 마음도 여간 초조했을 것은 그 처지가 아니어도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마음을 가눌 길 없는 심청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부친의 의복을 짓기 시작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심청의 이 작업이 무슨 도움을 줄 것이며, 아무리 효녀라고는 하지만, 죽음 앞에 얼마나 태연할 수 있었을까?

 

드디어 그도 인간적인 정(情) 앞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드디어 목메어 울기 시작하는데, 이 대목이 바로 나이 어린 딸의 속마음이 터져 나오는 계면조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지 생각된다.

 

“아이고 아버지, 날 볼 날이 몇 날이며, 날 볼 밤이 몇 밤이요?”라며 흐느끼고 만다. 때마침 원촌(遠村)에서 닭이 우니 “닭아, 닭아, 우지마라, 반야진관에 맹상군이 아니어든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가 않으나. 앞이 어두신 우리 부친, 뉘게 의지를 헌단 말이냐?”

 

 

이 대목에서 심청이가 끌고 들어오는 맹상군의 이야기가 잠시 슬픔을 잊고 웃을 수 있는 대목이어서 잠시 그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반야(半夜) 진관(秦關)에 맹상군’이라 함은 한밤중에 진나라 관문에 있던 맹상군의 이야기인데, 맹상군이란 전국시대 제 나라의 정승을 지낸 전문(全文)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친구들을 좋아하여 식객이 언제나 3,000여 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모여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그리고 사회, 문화 관련 이야기들이 노출되게 마련인데,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진나라 왕은 그를 시기해서 맹상군을 가두고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의 애첩에게 여우 가죽옷을 바치고 도망해 나와, 나라 밖으로 나가는 관문(關門)에 이르렀는데, 밤이 깊었던지라 문이 닫혀 있었다. 게다가 왕이 보낸 군졸들이 뒤쫓아 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가는 문은 막혀 있고, 뒤에서는 군졸들이 쫓아오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하게 된 것이다.

 

궁하면 통이라고 했던가? 그와 함께 도망치던 식객 가운데 한 사람이 닭의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가 닭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더니, 이 소리를 듣고 성(城)안의 모든 닭이 한꺼번에 울었다. 그 바람에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는 날이 샌 줄로 알고, 문을 열어주어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