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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통행금지를 어긴 사헌부 대사헌 파직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9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기억에 남아 있을 ‘통행금지‘. 광복을 맞으면서 시작된 통행금지는 1982년 1월까지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는데 광복 직후엔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1961년부터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가 통금시간이었습니다. 동무들하고 신나게 놀다가도 통금시간이 다가오면 ‘오금아 날 살려라’라면서 집으로 줄행랑을 쳤었지요. 어떤 이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꾀를 낸다는 것이 장승처럼 멀뚱히 서 있다 여지없이 잡혀 파출소행을 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통행금지가 물론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조선이 개국 되자마자 치안과 화재 예방을 위해 한성을 비롯해 주요 도시와 국경지방에까지 통행금지 시간을 두었지요. 시계가 없던 시절 성문이 닫히고 통금이 시작되는 때를 “인정(人定)”이라 하며 28번의 종을 칩니다. 인정을 친 이후는 지위가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통행금지를 위반하여 잡히면 엄한 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또한 통금이 풀리는 때를 파루(罷漏)라 하여 33번의 종을 쳐 백성들에게 알렸지요.

 

 

그런데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1401) 9월 21일 기록을 보면 사헌부(司憲府)의 우두머리 대사헌(大司憲)이 사사로이 통행금지를 어긴 일이 있었지요. 순라꾼이 이를 보고도 통행금지를 어긴 당사자는 잡지 않고 그의 종만 가두어 두었다가 아침에 풀어주었습니다. 이에 신하들에 대한 감찰과 탄핵 그리고 임금에 대한 간언을 주 임무로 하는 사간원(지금의 언론기관)이 당사자들을 파직해달라며 상소하고 이에 임금이 대사헌의 감투를 자르도록 한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흐지부지되는 요즘은 이런 추상같은 법 집행은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