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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 양종승의 <명인⦁명무 열전>

이애주 춤 사상과 생명철학

이애주 전통춤의 계승 그리고 미학 세계 3
민속학자 양종승의 <명인⦁명무 열전> 5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이애주 춤에는 시대 철학이 깃들어 진 우리네 춤 근본이 살아 숨 쉰다. 뿌리 있는 기틀과 원리를 인식하고, 그를 바탕삼아 품어낸 이애주 춤은 민중의 영혼과 사상을 펼쳐 보이는 마력과도 같은 춤으로 읽힌다. 섬세하고도 장엄한 춤사위로 환희와 기쁨을 품어내어 이애주만의 춤 맛을 우려내고, 정갈하고 기품 있는 전통의 맛을 살려낸 것이다. 대를 이어 오며 예술적 번뇌와 역경을 이겨내고 이애주 당대에 그 극치를 만끽한 것이다. 춤의 미학적 형식과 의미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경지에 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애주의 춤은 예술로서의 값어치뿐만 아니다. 그 속에 녹아내린 춤의 원리와 사상으로 감 싸워진 생명철학이 함께 동반되어 있다. 이는 춤으로써 신인(神人) 상생과 인인(人人) 화합을 끊임없이 추구하여야 올바른 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춤꾼의 내면적 감정을 표출하고 흥과 멋의 극대화를 통해 삶의 평정을 도모하기 위한 삶 속의 예술로 빛내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이 춤꾼 이애주가 평생토록 소망하며 그렸던 이른바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춤,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노는 생명의 춤으로 정착될 수 있다.

 

이애주의 춤에는 민중의 고뇌와 아픔의 다스림 그리고 인내가 곳곳에 서려 숨 쉰다. 유장한 여운을 남기는 신명적 흥과 멋도 담겨져 있다. 그것은 오랜 숙련으로 곰삭은 진 맛을 품어낼 수 있는 평생의 춤꾼 이애주가 전통춤을 깨우쳐 몸으로 온존하면 새로운 시대적 창안과 창작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지론을 확립하였기에 그러하다.

 

 

춤은 겉치레의 미학적 형식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 그리고 사유가 병립된 시대적 사고, 정서, 감각, 감정을 사회적으로 피력하는 움직임의 논리이기에 그렇다. 「땅끝」, 「나눔굿」, 「도라지꽃」 등이 그러한 실증적 작품들이다. 이애주는 또한 춤추기의 궁극적 목적은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며, 이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밝음을 지향하는 수양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실천에 도(道)를 얹어야 하며, 마음과 정신, 자세와 몸가짐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나가는 일련의 단련과 학습을 강조하였다.

 

이애주가 한밝사상으로 설명하는 춤 기조는 삶의 표현이고 시대의 몸짓이다. 그러기에 그 근원은 움직임의 시작이며, 실천하는 원천은 기(氣)를 들어 올리는 ‘영가무도(詠歌舞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춤)’다. 이는 움직임의 궁극적 목표가 춤으로 승화되는 것이고 소리로 울려지는 것이기에 오장으로부터 끌어올려진 내면의 숨이 밖으로 나와 소리로 음성화된 후 다시 몸으로 귀환하면서 발화되는 움직임 그것이 곧 무형적 현상의 춤인 것이다.

 

 

내면의 정신적 기(氣)가 외면의 움직임에 접목되어 무위자연적 경지로 치솟게 되면 정신과 소리와 몸짓이 한데 묶여 황홀경의 세계로 들어가 삼라만상의 무궁한 기운을 돋우어 낸다. 도법의 가락과 도술의 춤이 곧 영적 세계로 접어들게 하는 소리이며 움직임 그 자체다. 이는 이애주 춤론이 지향하는 무위자연의 춤, 음양 합일의 춤, 생명 살림의 춤을 말하는 움직임의 진실이며 근본이다. 이와 같은 영가무도의 근본이 한국 고유 사상인 한 사상과 음양오행을 깔고 있는 한민족의 밝은 춤이다(임재해, 2022, 32).

 

그리고 춤의 진리와 원리를 집약한 이와 같은 한밝춤은 한민족의 이상세계인 한밝사상에 기반을 둔다. 이는 태곳적부터 우리 겨레가 숭배해 온 태양숭배 사상으로써 대(大ㆍ太), 크다, 하나[一〕, 정(正), 시(始), 원(元), 최(最), 극(極), 영(永), 장(長), 광(廣), 중(衆), 다(多), 제(諸) 등으로 풀이되는 ‘한’과 광명 및 태양을 뜻하는 ‘밝’이 합쳐진 한민족 대일광명 세계다. 사상을 몸에 실어 읊조리다 소리하고, 꿈틀거리다 뛰고, 춤추다 놀아나는 어울림의 총화가 곧 한밝춤이다. 이러한 사상에 기반을 둔 정신적 사유와 육체적 율동이 진정한 춤 예술로 승화될 때 생명철학의 극치를 내보이게 된다.

 

이애주 춤론에서 주목되는 것은 근원 탐구다. 이것의 애초 모습은 굿이다. 춤의 근원이 굿 속에 있다고 본 이애주는 경기도당굿에 몰두하여 이를 몸소 전수하며 구조적 실기와 이론 탐구에 몰두하였다. 한민족 악가무극의 옛 모본을 찾아 거슬러 무속으로 들어간 이애주가 우리 춤의 원초적 모습을 갖춘 굿 형식에 천착하여 오랜 시간 학습하며 연구하였던 까닭이다. 이는 우리춤이 신앙의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굿은 영적 존재인 신령의 베품과 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누림을 목적으로 의식화되는 악가무극적 신앙의례다. 여기에서 춤은 반드시 추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손놀림, 발 디딤, 몸 굴림의 삼 화합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이른바 인간이 신을 대접하는 정성의 표현이다. 이애주의 모든 춤이 신앙의례춤의 기본적 틀에서 이루어지는 들이석배와 내리석배 형식의 세 번 내딛음과 세 번 물러 디딤으로 삼진삼퇴 디딤판 도형의 신앙의례의 그것이다.

 

이때의 삼진퇴법(三進退法)의 삼(三)은 시작, 완성, 안정, 조화, 변화, 무한, 무진, 재생, 반복 등을 상징하는 민족 삼신신앙의 기둥이다. 환인, 환웅, 단군왕검으로 모셔지는 세 분의 삼신이 하늘, 땅, 사람 등 천지인 사상을 앞세워 우리 역사문화 속에 존속되어 있다. 역사적 그리고 신앙적 의미를 담아 움직이는 발 디딤은 땅을 밟고 구르는 반복적 굴신의 답지저앙(踏地低仰)을 부추긴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 삼아 땅을 밟고 솟구치며 내면의 기운을 끌어 올렸던 이애주는 끝없는 자신의 춤 생애를 헌신하며 한민족 춤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손과 발의 협력, 협동, 협심으로 몸과 사지를 움직여서 수족상응(手足相應)의 춤새를 벌렸다. 그런 다음 태극사위에 엮어진 너울질로 엎어지듯 제치듯 파도를 출렁거리며 만물을 동적 세계로 몰아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에너지원 태극상이 조성되는 의미를 담아냈다. 그의 실천적 움직임은 춤 구조론과 형태론에 근거하여 움직임 속의 자연성, 즉흥성, 함축성, 역동성, 신명성, 창조성을 몸소 깨달아 터득하였다. 이러한 원리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움직이는 몸짓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觀)이 열린 춤꾼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애주 춤론은 동양사상과도 합치된다. 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 움직임인데 그 까닭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자연순환(自然巡還)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춘생하장(春生夏長), 추수동장(秋收冬藏), 곧 봄에 나서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추수하고 겨울에 갈무리하는 자연적 순환은 하늘의 법칙이며, 이를 어기면 천하의 기강을 세울 수가 없는 논리를 갖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기반으로 한 이애주 춤에는 신라 대학자 최치원이 설한 접화군생(接化群生, 곧 뭇 생명의 만남으로 변하는 이치와 같은 것으로 변화, 진화, 감화하는 춤의 접화군생적 의미가 담겨 있다. 춤의 조화와 통일의 음양오행(陰陽五行), 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의 종즉유시(終則有始),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 등에서 나타내 보이는 화합성, 통일성, 영속성 등의 춤 원리 또한 주역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애주 춤은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살아 숨 쉬지 않거나 생명에 반하는 헛된 움직임에는 동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이애주 춤과 소리와 가락 모두에는 생명의 움직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원리는 자연적 법칙에 의한 영적 현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곧, 바람은 자연이며 삼라만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바람을 좌우하는 자연 그리고 그로부터 일어나는 힘은 스스로 움직여 꿈틀거리는 기운이기에 사물의 감각과 느낌의 현상 속에서 주어진 소임을 다 하게 한다.

 

맞이 또한 영적 존재의 힘에 의한 지극히 물리적 현상이다. 영기(靈氣)로 얻어진 몸짓이 맞이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사고에 의해 표현되는 생명을 가진 움직임 그 자체다. 그러하기에 춤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애주 바람맞이춤은 영적 존재가 뿜어내는 생산적 기운으로써 스스로 자각을 일으켜 천지 만물의 생명을 일으키는 물리적 현상이며 움직임의 귀결이다. 이와 같은 춤의 생명철학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행해지는 춤 추기이던지 꼭 존재하여야 하는 움직임의 근본적 원리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의 문화 중심은 무형유산에 쏠렸다. 무형문화예술의 값어치가 더욱 높아지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춤은 인류의 지혜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 그리고 사상과 철학이 담긴 문화의 보고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류 생명과 역사문화를 일깨우고 살찌우며 계승 발전되어 춤 문화는 인류 삶의 핵심이며 무형유산의 정수다. 그래서 그 값어치는 남다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춤 문화는 이애주의 춤론과 생명철학에서 설파한바, 자연과 더불어 이어져 온 삶 그 자체의 움직임이다.

 

막연한 움직임으로 춤을 설명하는 것이라 우리의 삶 속에 담겨 있는 환희와 희열, 아픔과 고통이 함께 우러나는 춤, 그것이 곧 생명을 담론화하는 춤의 철학이고 예술 미학이라는 것이다. 무한히 무형적이며 사상적이고 또한 이념적이고 사유적일지라도 예술 미학의 관점에서 논할 수 있는 춤의 생명철학이다.

 

이것이 응집돼 예술 미학의 극치를 이루며 무형유산의 결정체로써 그리고 총체로서 역할 하게 된다. 이제 현대사회의 새 문화 창조에 큰 틀로 역할 하게 되었고, 그 선상에 춤꾼 이애주의 춤이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애주가 계승하고 창작한 춤 그리고 그의 춤론과 그 속에 담긴 생명철학은 더없이 한국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춤은 은유적 사유를 근거로 문화예술의 시대적 변화를 이끌며 미학적 창조를 선도하는 신명풀이의 몸짓이다. 시대적 이념을 담은 삶으로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실천적 움직임으로 우리네 정신, 생각,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표방한다. 춤꾼 이애주는 그러므로,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사상을 달구면서 창세에서 오늘에 이르도록 춤의 본성과 본질을 시대적 담론으로 정착하도록 하였다.

 

그의 춤은 정치적 전제, 사회적 고난, 경제적 궁핍, 문화적 혼란, 예술적 무엄(無嚴)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중의 불림으로 그리고 윤택한 사회와 매끈한 삶을 담보하는 완명(頑命, 죽지 않고 모질게 살아 있는 목숨) 속에 정주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드러낸 신명의 춤사위, 생명이 깃든 감흥 세계의 향연, 그것이 춤꾼 이애주가 춤의 본질과 원리를 꿰뚫어 세상 밖으로 내보인 춤 의미와 값어치다. 그리하여 그의 몸짓은 그가 내세운 판을 통해 활짝 꽃 피어짐으로써 세기의 주역으로 승화되었다.

 

춤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관(內觀)으로 추어지는 깨달음의 몸짓이라는 지론 또한 이애주의 거시적 안목으로 설파된 춤에 대한 혜안이다. 그러하기에 춤추기에는, 이른바 악에서 선으로의 개심, 거짓에서 참으로의 회개, 어두움에서 밝음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생명 살림의 철학이 담겨야 한다는 그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애주는 우리 춤과 움직임의 생명철학으로 사회적 구원을 외쳤던 시대의 춤꾼이었다. 그래서 평생 우리 춤의 뿌리를 붙들고 무궁 창성에 앞장섰던 전통춤 계승자, 추악하고 해로운 액운을 제치고 새로운 세상 문을 열어 이로운 기운을 불러들였던 시국춤 창시자 이애주는 타고난 생득적 자질로 면면한 학습과 심미적 재능의 삼위일체를 곧게 갖추어 세기의 춤꾼으로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