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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96. 김종직의 백성 사랑과 죽은 아내에 대한 절절함

“나라에 바칠 차(茶)가 이 고을(함양)에는 나지 않는데도 해마다 백성에게 차세(茶稅)가 부과되었다. 그래서 백성은 나라에 차세를 바치려고 전라도에서 쌀 한 말을 주고 차 한 홉을 얻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이러한 폐단을 알고 백성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관가에서 사서 대신 올렸다.” 

조선 전기 성리학자이며, 문신·영남학파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 ~ 1492)은 함양군수 시절 백성의 차세 고통을 보고 차를 관에서 대신 사서 올렸고, 관의 차밭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차밭을 만든 뒤 김종직은 시를 읊조립니다. “신령 차 받들어 임금님 장수코자 했는데 / 신라 때부터 전해지는 씨앗을 찾지 못하다 / 이제야 두륜산 아래에서 구하게 되었으니 / 우리 백성 조금은 편해져 기쁘네.”라고 말입니다.  

김종직의 사상과 학문적 경향 그리고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가 백성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정해야 할 일입니다. 또 아내 영전에 바친 제문 곧 <제망처숙인문(祭亡妻淑人文)>의 “삼가 제물을 갖추어 당신 영전에 고합니다. 우리가 백 년을 함께 하기로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 그런데 당신은 영영 내 곁을 떠나려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단 말입니까?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한마디 말도 제대로 이를 수가 없습니다.”에서 그의 인간성을 되짚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