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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009. 1930년대 쌀라리맨의 수입은 얼마였을까요?


요즘 직업별 수입은 얼마나 될까요? 한 통계에 따르면 도선사의 연봉은 무려 9,147만 원으로 1억 원에 가깝습니다. 안과의사, 대학 총장, 변호사가 그 뒤를 잇습니다. 일반 의사는 저 뒤 65위에 있으며, 검사는 92위, 비행기 승무원은 96위인 3,380만 원으로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적습니다. 그러면 1930년대는 어땠을까요? 1936년 1월 1일에 발행된 잡지 ≪삼천리≫ 제8권 제1호에는 “현대 쌀라리맨의 수입조”라는 항목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이는데 요즘 말로 표기를 고쳐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수: 전속가수나 되면 월급 60원 이외에 인세와 특별출연에서 수입되는 것을 합하면 100 원 정도는 됩니다만 옷을 해 입고 사교에 써야 하니 밑지고 다닙니다. / *뻐스껄: 1일 수입은 75전이고 노동시간은 10시간인데 어머니와 동생과 세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부족합니다. / *여직공: 하루 수입 45전 노동시간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1개월 기숙사비 9원 주고 그 나머지는 옷을 해 입습니다. / *의사: 월급의사면 100원은 보통이고 개업하면 현금수입 300원 이상은 됩니다. / *인력거부: 잘해야 하로 50전 벌지요. 비나 오면 돈 1원(圓)씩이나 생깁니다. 많이 벌면 많이 쓰고 벌지 못하면 굶는 것밖에 없습니다. / *두부장사: 하루 잘해야 30전 생기지요. 소리 지르고 돌아다니자니 막걸릿잔이나 먹어야지요.”

이 기사를 보면 당시 개업의는 돈을 많이 법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수인데 수입이 괜찮다는 전속가수라도 월급에 인세와 특별출연 수입을 합해 100원 정도지만 옷 해 입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므로 늘 회사에 빚을 진다고 말합니다. 특히 뻐스껄(버스 안내원)은 세 식구 생활비로 모자란다고 하며, 여직공은 기숙사비 주고 나머지는 옷을 해 입을 정도라고 하는 등 당시도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차이는 큽니다. 또 서울에서만 다녔던 전차 차장은 1시간에 13전(錢)을 받아 하루 10시간 일해서 1원씩 저금하는 것 외에는 남지 않는다고 하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언제나 빈부의 격차가 있게 마련인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는 더욱 열악한 환경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사라진 ‘뻐스껄, 인력거부,’ 같은 직업도 새삼스럽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늘 생활비가 모자라는 사람이 없는 세상,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격차가 줄어드는 세상은 언제 오려는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