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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012. 선조임금 피난길 불쏘시개가 된 화석정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처량한 울음소리 저녁구름 속에 그치네.”

위는 경기도 파주 화석정에 걸린 율곡 이이의 8살 때 시로 알려진 <팔세부시(八歲賦詩)>입니다. 화석정은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 잡은 경치가 빼어난 곳이지만 최근에 이 앞쪽으로 새로이 길이 생겨 예전의 절경은 구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곡 이이가 즐겨 찾던 발자취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요즈음도 많습니다.

이러한 유서 깊은 곳이 선조임금과 관련이 있는데 선조임금이 율곡 이이처럼 자연경치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왜놈들을 피해 피신하다 다다른 곳이 바로 여기 화석정지요.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던 중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에 다다른 곳인데 앞에는 천길 벼랑 물길이요 뒤에는 벌떼 같은 왜놈 병사들입니다. 그때 한 신하의 기지로 화석정에 불을 질러 불빛을 환하게 하고 선조는 부랴부랴 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화석정은 선조가 강을 건너게 하려고 한줌의 재로 변한 것이지요.

그 뒤 덩그마니 빈터로 남아 있던 화석정은 8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673년(현종 14)에 율곡의 증손인 이후지(李厚址)·이후방(李厚坊)이 한차례 복원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타버리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현재의 모습은 1966년 파주시 유림들이 복원한 것을 1973년 정부의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하나로 재정비한 것입니다. 율곡의 정취가 서린 화석정은 선조의 피난용 불쏘시개로 쓰였으니 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