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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019. 자리에 연연하지 않던 조선의 재상들


“제가 벼슬자리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비단 신의 집 명예에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선비의 기풍에 흠이 되게 한 것이니, 신이 무슨 마음으로 감히 벼슬을 생각하여 만인이 함께 바라보는 영상의 지위에 뻔뻔스러운 얼굴로 있겠나이까. 저를 파면하시어, 문을 닫고 죽음을 기다림으로써 물의를 일으킴에 사과하는 것이 신하의 직분이라 생각하옵니다.”

위는 세종 22년(1440) 12월 21일 영의정 황희가 자기 아들이 도둑질한 것이 드러난데 대해 스스로 파면을 원하는 상소를 올린 내용입니다. 황정승의 아들 황중생은 내탕(內帑, 임금의 재물을 넣어두는 창고)의 금술잔과 광평대군(廣平大君)의 금으로 된 띠 그리고 동궁이 쓰던 이엄(耳掩, 모피로 된 방한모)들을 훔쳐 발각된 것입니다. 이에 명재상 황정승은 부끄러워하며, 만인지상 영의정 자리에서 내쳐주기를 바랐지요.

그런가 하면 세종 7년(1425) 6월 24일에는 영돈녕 유정현이 늙어서 나랏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사직하고자 청했습니다. 또 세종 20년(1438) 12월 25일에는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이 늙은 어머니의 모심을 들어 사직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임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한번 자리에 앉으면 두고두고 자리를 차지 하려는 요즈음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처사지만 당시에는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물러서고 나아감을 스스로 엄격히 지키려 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