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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76. 백범 아내 최준례 여사 한글 묘비


백범 김구 선생의 아내는 중국 땅에서 폐렴으로 고생하다가 삶을 마쳤습니다. 남편 백범은 그런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지켜주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내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백범은 아내가 입원한 병원이 일본 조계지(점령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임종조차 할 수가 없었지요. 

장례식은 1924년 1월 4일 프랑스 조계 숭산로 경찰서 뒤쪽의 공동묘지에서 열렸습니다. 백범의 동지들은 최준례가 겪은 고난이야말로 나랏일에 공헌한 것이라며 의연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묘비까지 세워주었지요. 이때 세운 묘비는 한글학자 김두봉이 오로지 한글로만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단기 4222년 3월19일) 대한민국 ㅂ해 ㄱ달 죽음(대한민국 6년1월) 최준례 묻엄(무덤) 남편 김구 세움“이라고 썼습니다. 'ㄱ, ㄴ, ㄷ.......ㅈ, ㅊ'은 차례대로 '1, 2, 3,....9, 10'을 의미하기에 출생일은 단기 4222년(서기 1889년) 3월 19일이며, 사망일은 ‘대한민국 6년(원년은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곧 1924년 1월 1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비는 광복 직후 고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이 상하이에서 아내의 주검을 옮겨 올 때 함께 가져오지 않아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로지 한글로만 묘비를 쓴 당시 김두봉 선생과 백범 그리고 임시정부 요인들은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글 묘비는 ‘죽음’이라고 쓰면 될 것을 ‘서거, 별세, 영면’처럼 쓰는 요즘 사람들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