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 구름많음동두천 19.2℃
  • 흐림강릉 15.3℃
  • 구름많음서울 20.9℃
  • 구름조금대전 24.5℃
  • 구름많음대구 27.0℃
  • 구름조금울산 19.2℃
  • 맑음광주 26.7℃
  • 구름많음부산 21.1℃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5.2℃
  • 구름조금강화 15.6℃
  • 구름조금보은 23.0℃
  • 맑음금산 23.8℃
  • 맑음강진군 26.8℃
  • 구름조금경주시 20.6℃
  • 구름많음거제 24.6℃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살림살이

감나무 끝에 까치밥 몇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입동(立冬)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신호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 번째이며, 양력 11월 7일이고,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해의 황경이 225도일 때인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 중 초후(初候)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는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대가댁 김장은 몇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것도 우리 겨레가 자랑하는 더불어 살기의 예일 것이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점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까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까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또 이 때에는 추수를 무사히 끝내게 해준 데 대해 감사의 고사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외양간 등에 고사 지낸 뒤, 소에게도 주면서 수확의 고마움과 집안이 무사한 데 대한 감사를 드린다. 또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으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鄕約)을 보면 봄가을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 그믐날 밤에 나이가 드신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해 있었다. 논밭 한 뙈기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한 해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기꺼이 금품을 내놓았다. 입동은 수능시험일과 겹치기 일쑤이다. 입시한파라 하여 그렇지 않아도 매년 이맘때만 되면 전국이 온통 얼어붙는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남은 어떻게 되든지 나만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차가운 마음을 갖게 되어 온 세상에 냉기로 가득 차게 된 결과가 아닐까? 송강 정철은 다음처럼 “한밤중 산 속의 절에서(山寺夜吟:산사야음)”라는 노래를 한다. 蕭蕭落木聲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錯認爲疎雨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呼僧出門看 스님 불러 문 나가서 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나뭇잎 지는 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하여 동자승에게 나가보라고 했는데 밖에 나가본 동자승은 “시내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렸네요.”라고 대답한다. 동자승의 말이 참 아름다운 시다. 이렇게 가을은 깊어 간다. 아니 벌써 입동이 지나고 겨울이 성큼 다가선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가? 바쁜 세월을 살고 있지만 붉게 물든 산세도 돌아보고, 고통 속에 떠는 주변도 돌아볼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