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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동지(冬至)엔 팥죽 먹고 액운을 막아내자!

12월 21~23일은 팥죽을 쑤어 먹고 달력을 나눠 가지는 동지다. 동지는 24절기의 스물두 번째고, 해가 적도 이남 23.5도의 남회귀선 곧 동지선(冬至線)인 황도 270도에 오며, 양력 12월 22~23일에 든다. 동지는 대설과 소한의 중간에 있는데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해가 남회귀선에 도달한 때로 밤이 제일 길지만 동지 이후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지방,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이 동짓날을 설날로 지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동짓날을 작은설, 곧 다음해가 되는 날이란 의미로 ‘아세 (亞歲)’라 했다.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 정도로 11월은 동지가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은 신약성서에 쓰여 있지 않아서 옛날에는 1월 6일이나 3월 21일을 성탄절로 지내기도 했지만 4세기 중엽이 되어서 로마 교황청이 성탄절을 동지설날과 같은 날로 정했다고 한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동짓날에는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의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에는 자신의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었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을 쫓는다고 믿은 것인데 어쩌면 겨울철 먹을 것이 부족한 짐승들을 위해 보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런 다음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고,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으려는 것이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절에서도 죽을 쑤어 중생들에게 나누어주는데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귀신을 쫓는다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지가 동짓달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지만 지금은 상관없이 쑤어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서 찾는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으려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이야기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와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옛날 왕실에서는 동짓날부터 점점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다. 궁중에서는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임금의 도장 곧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주는데, 벼슬아치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해마다 동지 때는 제주목사가 특산물인 귤을 임금에게 바쳤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종묘(宗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음식과 비단 등을 내렸다. 또 귤을 진상한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했다.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 해에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하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속담에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동지 때 개딸기'란 말도 있는데 추운 동지 때에 개딸기가 있을 리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시어머니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려고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는데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한다. 


동지 때는 보통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서릿발 때문에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도록 보리밟기를 한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쌀에 든 돌 등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것인데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복조리를 부뚜막이나 벽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가득 들어오기를 빌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하지만, 이때 아녀자들이 할 일은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와 무말랭이 등 각종 마른나물 말리고 거두기에 바쁜 철이다.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윷놀이와 곡식을 말릴 때 쓰는 멍석, 재를 밭에 뿌릴 때 쓰는 삼태기, 풀을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했다.


또 깊어가는 겨울밤 화롯불에 추위를 녹이며, 고구마를 찌거나 구워 동치미와 함께 먹기도 했는가 하면 달디단 홍시감을 먹기도 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한밤중엔 “찹쌀떡 사~려, 메밀묵 사~려”하는 정겨운 소리를 들으면 잠들기도 했다.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