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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고조선-고구려-고려 '역사 정통' 살려야

[역사문화산책-대한민국은 작은 나라[小國]인가?(1)]

[얼레빗=심순기 기자]  종점은 모른다. 단지 시작점만 알뿐이다. 필자의 손끝이 멈추지 않고, 독자들이 유익하다고 판단하면 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장보다 더 소란스러운 역사문화의 오솔길을 걷는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 길 위에 첫 걸음을 뗀다. 역사문화 산책길이 꼭 오솔길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을까 봐서 미리 짚어본다. 시작은 오솔길일지 모르지만 가다보면 오솔길이 큰길이 될 수도 있다. 이 오솔길은 한국인이 우리의 역사문화를 바라보는 눈이다. 마음이다. 가짐이다. 함께 역사문화를 바라보는 눈이 커지면 길도 커질 것이다. 마지막에는 독일의 아우토반 같은 큰 길이기를 바라면서 그 광대한 역사문화 산책의 첫걸음을 뗀다. <편집자 주>


   
▲ 숲 속의 호젓한 오솔길, 이 오솔길은 한국인이 우리의 역사문화를 바라보는 눈이다. 마음이다. 가짐이다. 함께 역사문화를 바라보는 눈이 커지면 길도 커질 것이다. 마지막에는 독일의 아우토반 같은 큰 길이기를 바라면서 그 광대한 역사문화 산책의 첫걸음을 뗀다.(록키스펜션 제공)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小國]인가? 


가끔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논란이 되는 게 바로 이 질문이다. 한국은 작아서, 힘이 없어서, 문화가 얕아서라는 전제를 깔고 말을 시작하는 국민이 꽤 많음에 놀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혹자는 일제식민사관 영향이라고 말하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작은 나라 논쟁은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중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단재 신채호선생이 이야기 한 일천년 내 거대한 사건주인공인 묘청이 그 중심에 있다. 물론 묘청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묘청과 자웅을 겨뤄 승리한 김부식이 그 원인 제공자다. 김부식은 묘청을 비롯한 서경 즉, 고구려세력들을 정치에서 완전하게 몰아낸 뒤 아예 역사정통을 바꿔 버렸다. 고조선 고구려 고려로 내려오던 역사정통을 신라 고려로 바꾼 것이다. 


고조선은 사라졌고, 고구려와 발해는 신라와 함께 존재했던 형제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힘없는 나라였다. 그러다 중국과 부질없는 힘 대결을 펼쳐 결국은 멸망의 길을 걸었다. 김부식은 고구려와 백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고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센 나라.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는 어디로 갔는지 말해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고구려가 신라를 얼마나 도와주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 고려가 왜 고려라고 국호를 정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려는 신라의 역사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바뀌었다. 


신라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 문화를 더 숭상한 나라였다. 신라보다 더 대국인 중국의 문물을 받아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낼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신라의 자랑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유산들을 보면 정말 신라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다. 황룡사와 그 목탑은 백제인인 아비지가 건축했다. 불국사와 석가탑 등을 만들 때는 아사달이 활약했다. 석조건축의 총책임자로 일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400년 대 신라문화의 자랑이라고 하는 금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다. 오로지 400~500년 사이에서만 만들어졌다. 문제는 광개토태왕이 400년에 군사 5만을 이끌고 신라에 주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아마도 옛 삼국사기등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그 어디에도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했다는 말은 없다. 


오늘날 신라사를 하는 역사학자와 경주의 향토사학자, 경주박물관 등의 문화유산해설사 등도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하고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관은 그러한 사실들을 조용히 이야기 해준다.


우리는 신라와 관련이 없어요.” 


한국에는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그 문화유산들 모두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모두 소중한 것들이지만 우리들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더욱 애착이 가는 문화유산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잘못된 인식에 젖어 있다. 바로 국보의 번호에 집착하고 있다. 불타버린 숭례문은 이제 국보가 아니다. 국보의 기준은 오래되고 귀하고 가치와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예술성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숭례문은 오래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이 충족될 뿐 귀하지도 가치와 의미가 있지도 않다. 서울 도성의 남쪽 문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전하는 것일까? 우리 고유의 성문의 특성인 옹성구조도 아닌 중국식의 일자 형태의 평문인 숭례문이 말이다.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숭례문 흥인지문 순으로 늘어놓은 것을 숭례문은 국보1호로, 흥인지문은 보물1호로 정하면서부터 국보1호는 대단한 가치가 있는 보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숭례문보다 훨씬 오래되고 가치가 있으면서도 귀하고 예술적인 국보들은 무척 많다. 1호가 1등은 아니다. 


사실 두 문 중에서 국보는 흥인지문이어야 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성문형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며, 성문도 더 아름답다. 몇 번의 개축을 한 것이 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것은 숭례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논쟁의 대상은 아니다. 문화재들 모두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처럼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이 문화유산 이야기는 모 교수의 답사기와는 다르다. 미술적인 관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문화적이면서 전통적인 면을 다룬다. 


그 속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살려보려 한다. 그러면서 대 주제인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 한다. 역사문화 산책길을 동행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심순기 :
체험학습의 메카 한국체험학습교육협의회 대표
전 주간현대 편집국장
전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역사문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독립운동의 대부 홍암 나철 조연출'/2004229일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