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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연주하니 검은 학이 춤추었다

선비와 함께 한 악기, 거문고 이야기 1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風入松)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험한 세상사를 잊고, 벗과 함께 술을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거문고를 타니 누가 손님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니 술 탓일까 거문고 탓일까? 벗과의 자리뿐만이 아니라 혼자 즐기는 거문고의 세계도 절제와 내면세계로의 침잠을 통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고 소리()와 하나가 되는 주객일체의 경지로 갔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이수자 한민택의 연주

   
▲ 중국 지린성 지안의 장천 1호분 벽화, 여성의 거문고 반주에 맞춰 남자가 춤을 춘다.


중국 악기, 거문고는 한국음악을 위한 악기  


고구려의 옛 서울인 만주 지안현[輯安縣]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고분 무용총 벽화와 제17호분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417괘의 현악기가 그려져 있고, 또 안악에서 발굴된 고분 제3호의 무안도(舞樂圖)에도 거문고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는 줄이 여섯이 아니고 4줄이며,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괘가 16개가 아니고 17개로서 조금 다르지만 악기를 무릎 위에 놓고 손에 술대를 쥐고 연주하는 모습으로 보아 거문고의 원형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악지의 현금 부분을 보면 왕산악이 진나라에서 보낸 금을 개조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일백여 곡을 작곡하여 연주했더니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학금이라 했다가 나중에는 그냥 현금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음악에 사용되던 금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음악에 쓸 수 있도록 고쳐져 거문고가 되었다. 그것은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이 같지 않다는 말이 된다. 왕산악이 작곡했다는 1백여 곡도 중국음악과 다른 한국식 음악이었을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니까 금은 중국음악을 연주하기에 편리한 악기이고 거문고는 한국음악을 연주하기에 맞는 악기다 


   

▲ 거문고(위), 거문고 각 부분 이름(아래)


거문고나 가야고의 ""는 현악기()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그래서 가야금을 가얏고로 말하기도 한다. 국어학자 이탁(李鐸)국어학 논고에서 고구려라는 이름 중 ()’만이 나라 이름이고 구려(句麗)’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며, ""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거문고는 고구려의 나라 이름을 뜻하는 '(또는 검)'과 고대 현악기를 두루 일컫던 ''가 붙은 말로서 '감고' 또는 '검고'가 거문고로 변한 것으로 보았다.  


거문고의 울림통은 아쟁과 같은 상자식인데 머리쪽은 용두(龍頭), 꼬리쪽은 봉미(鳳尾), 용두의 윗면은 좌단(坐團)이라고 한다. 통 위에는 단단한 회목 (檜木)으로 만든 16개의 괘가 차례로 세워져 있다. , 통 위에는 6개의 줄이 용두와 봉미 사이를 연결하며, 줄은 가까운 쪽으로부터 문현(文絃), 유현(遊絃), 대현(大絃), 괘상청(上淸), 괘하청(下淸), 무현(武絃)이라고 부른다. 유현, 대현, 괘상청은 괘 위에 올려져 있고, 문현, 괘하청, 무현은 안족 위에 올려져 있다.  


거문고, 가야금, 아쟁 따위에 있는 안족은 줄에 괴고 위아래로 움직여 줄을 고르는 기구인데 기러기의 발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안족(雁足) 곧 기러기발이라고 한다. 술대를 사용할 때 통의 앞면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대모(玳瑁)를 붙인다.  


거문고는 길이 162센티미터, 넓이 22센티미터, 높이 14센티미터로 앞판은 오동나무를 5년 이상 자연 건조하여 만들고, 뒷판은 밤나무를 3년 이상 그늘에서 말린 것으로 만든다. 안족은 돌배나무, 벚나무로 만들며, 괘는 돌배나무, 벚나무들을 쓴다
 

선비를 매료시키는 거문고 음악들  


   

▲ 거문고 줄 고르기(혜원 신윤복)


거문고는 대표적인 기악곡인 영산회상(靈山會相)과 궁중에서 쓰이던 관악합주곡인 보허자(步虛子) 계통 음악과 전통성악곡인 가곡 반주 등 주로 정악에 많이 쓰인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는 거문고가 지닌 특성을 잘 활용하여 훌륭한 감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산조란 장구 반주에 맞추어 한 악기의 독주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며, 46개의 악장으로 나누어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거문고산조는 고종 33(1896) 백낙준에 의해 처음으로 연주되었으나, 일부 층에 의해 거문고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비난을 받아 빛을 보지 못하다가 개화기에 들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느린 장단인 진양조, 보통 빠른 중모리, 좀 빠른 중중모리, 절름거리는 5박인 엇모리, 빠른 장단인 자진모리 등 5개의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율을 보면 모든 악장의 첫 부분이나 중간에 잠깐 나오는 담담하고 꿋꿋한 느낌의 우조와 흔히 끝에 나오는 슬프고 부드럽고 애절한 느낌의 계면조로 짜여 있다.  


거문고산조는 수수하면서도 웅장하고 막힘이 없는 남성적인 절제미가 돋보이는 음악으로, 우조와 계면조를 섞은 빠르고 느린 리듬이 조이고 풀고 하면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백낙준에게서 비롯된 거문고산조는 신쾌동류·한갑득류·김윤덕류 등이 전승되고 있다.